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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2012년

강진 다산초당과 만덕산 백련사와 영암 월출산

 

얼마전(2014년 4월) 블로그를 만들면서 지난 산행기를 정리해본다.

우연히 들어오신 님들 , 최근 글이 아니어서 실망할 모습이 미안해진다.

 

 

 

2012년 6월 22일 금요일

혼자 떠나는길 일곱번째

남도답사 일번지 강진으로 떠난다..

 

동서울에서 광주로, 광주에서 새벽 4시 40분차로 강진으로 간다.

강진에서 초당가는 첫 버스를  기다리는데 시간이 지나도 오질 않는다.

왠걸, 버스기사가 터미널 들어서면서 사람없다 생각하고 그냥

돌려 가버린것이다. 이렇게 황당한 일이.. 매표소 여직원이

근처 영랑생가를 둘러보고, 7시 30분차를 타라한다..

5분거리에 있는 영랑생가로 간다.

 

 

 

 

안채로 드어서기전 문간채..유족들의 고증으로 복원했단다..↑

 

 

 

 

널찍한 안채 툇마루에 앉아본다..  빽빽히 들어찬 대나무밭과

오래된 동백나무가 운치를 더한다.

 

 

 

 

 

곳곳에 영랑의 시비가 세워져 있다.. 옛날, 육중한 시비를  유홍준 교수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작위적이다  쓴소리한뒤  아마도  치웠을거란 생각이 든다..

순수 서정시인 김윤식. 그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지만 어쨋든

학교때  누구나 한번쯤 외워봤을,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릴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시간이 돼서 터미널로 돌아가 다산초당으로 간다..

 

 

 

 

 

다산초당 기념관으로 가는길엔 이런 자작나무 같은 길이 조성돼 있다.

대부분 자작나무로 알고 있겠지만, 이건 두충나무다..

이른 아침이라 기념관 문은 닫혀있고, 나는 바로 초당으로 올라간다.

 

 

 

 

 

뿌리의 길

 

다산초당으로 올라가는 산 길

지상에 드러낸 소나무의 뿌리를

무심코 힘껏 밟고 가다가 알았다.

지하에 있는 뿌리가, 더러는 슬픔 가운데 눈물을 달고

지상으로 힘껏 뿌리를 뻗는다는 것을

지상의 바람과 햇볕이 간혹

어머니처럼 다정하게 치맛자락을 거머쥐고 뿌리의 눈물을 훔쳐준다는 것을...

.

.

정호승

 

 

 

초당으로 올라가는 길은 이렇게 뿌리를 드러낸 나무들이 많이 있다

오랜 유배생활을 하며 이곳을 지났을 다산을 생각하며 걷는다..

 

 

 

 

초당이라 하기에는 팔작 기와지붕으로 툇마루도 넓고 길며, 방도 큼직해

유배객이 살던 집이라 믿기 어렵다.원래는 조그만 초당이었던 것이 무너져

다산유적보존회에서 큰집을 지어드렸다 한다. 다산을 위해서..?

처음 이곳에 와 본 사람이라면 유유자적 팔자좋은 유배생활을 누렸다 생각할것만

같아 심기가 썩 좋지는 않다..

 

 

 

 

다산이 직접 가꾸었다는 연못.. ↑

 

 

 

 

내가 앉은 널찍한 돌이 다조 라고해서 그곳에서 차를 달였다고 한다..↑

힘들어, 아무 생각없이  앉은것이 미안해진다..

 

 

 

 

다산의  진짜 유적이다..↑ 정석..

 

 

 

 

 

초당옆, 작은 기와집에 다산동암 이라는 정약용 글씨를 집자한 현판이

걸려있다. 아래 김정희의 "보정산방 " 과 비교해 보면 두학자의 성품차이를 알수 있다.

유홍준의 말을 빌리자면, 정약용의 글씨는 해맑은 느낌이 마치 천고의 무공해

글씨체 같기도 하고, 술에 골아떨어진 다음날 아침 밥상에 나온 북어국 백반

같기도하다.이에 반해 추사는, 진짜 예술가로서 명필이었다.글자의 구성과 획의 변화에서

능수능란하고 자유자재로워 멋대로인 듯하지만 질서가 있고 파격을 구사했는데도

어렵지 않다..정약용의 글씨는 프로가 아니면서도 프로를 넘나드는 아마추어리즘의 승리,.

그래서 그에게 명필의 칭호를 아낄 이유가 없다....

 

 

 

 

 

정약용이 다산동암에서 썼던 시 한구절도 애틋하다.

외로움을 달래고자 새에게도 함께 살자 조르는듯한  그 글과 그림옆에 쓰인 사연..

 

파르르 새가 날아 내 뜰 매화에 앉네.

향기 사뭇 진하여 홀연히 찾아왔네

이제 여기 머물며 너의 집을 삼으렴

만발한 꽃인지라 그 열매도 많단다.  

 

"내가 강진에서 귀향살이한지 수년 됐을때 부인 홍씨가 헌 치마 여섯폭을 부쳐왔는데

이제 세월이 오래되어 붉은빛이 가셨기에, 가위로 잘라서 네첩을 만들어

두 아들에게 물려주고 그 나머지로 이 족자를 만들어 딸아이에게 준다..

                                             

 

 

 

다산초당은 남향인데도 어둡고 습하다. 동암 옆 천일각으로 간다.

다산 유배시에는 천일각은 없었지만 ,그분역시 마음 답답할때 초당을 나와 이곳에서

구강포를 바라보며 많은 생각에 잠겼을 것이다..

 

 

 

 

천일각에서 바라본 구강포..천일각에 앉으면 시원스레 강진만을 볼수가 있다..

 

 

 

 

천일각을 지나 몇번을 오르락하니 백련사 가는길이다..그리고 만덕산 깃대봉.

유독 대나무가 우거진 좁다란 오솔길..그 옛날 다산이 강진 유배시절 인간적,사상적으로 영향을 많이

주고 받았던 백련사 혜장스님을 만나러 다니던 길이다..

 

 

 

 

바로 백련사로 내려갈까 하다가 잠시 만덕산 깃대봉에 다녀오기로 한다..

 

 

 

 

 

만덕산 깃대봉.. 한참 언덕배기를 넘었지만 힘들다는 생각보다는

다산에 대해 , 그리고 그가 걸었을 만덕산 곳곳을 걸을수 있음에  잠시  행복감마저 밀려온다.

다산이 되어 상념에 빠져본다.

 

 

 

 

 

 

바람재 방향. 뒤로는 주산산~덕룡산, 그리고 해남 두륜산이겠다..

 

 

 

 

 

 

 

 

 

헬기장 방향으로 내려서야 백련사가 맞는건지 잠시 머뭇거린다..

약간 알바를 하긴 했지만 절집을 보니 백련사가 맞다.. 나를 먼저 반긴건

늘어지게 낮잠을 즐기는 늙은 개한마리다..

 

 

 

인기척이 났음에도 슬쩍 눈한번 뜨는척 하더니, 다시 감아버린다..

자기네 절에 도움 안되는 떠돌이임을 알아챘나보다..

 

 

 

백련사 앞마당 뙤약볕 아래, 꼿꼿이 서있는 접시꽃 하나..

 

 

 

 

 

 

 

 

백련사는 지금 한창 공사중이어서 가까이 갈수가 없다..

 

 

 

 

 

 

 

 

백련사는 기골이 장대한 무인의 기상이 풍기는 절이다.. 절집 내력이

13세기 무인세력과의 인연으로 화려한 시기가 있었음이다..

120년간 백련사는 8명의 국사가 배출되었으니, 그 위세와 화려한 영광이야..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는 3000평 규모의 울창한 동백림으로 백련사는

더 유명해져 있다..  이른 봄의 백련사 동백림을 한번 보고싶어진다..

 

 

 

 

 

 

 

 

 

 

 

 

 

 

 

 

오늘 백련사에 와서 제일 눈에 띈것은 역사적인 백련사도,

백련사의 가람배치도, 동백림도 아닌  이 꽃나무다. 우리 시골 면사무소 앞마당엔

한여름이면 이꽃이 흐드러지게 피었었다.. 이름이 뭔지  모르겠어서 찾아봤지만

잘 모르겠다. 다시 찾아봐야겠다.. 우린 그 그늘이 한여름 피난처이기도 했다.

백련사를 뒤로하고 영암 월출산으로 간다..

 

 

 

 

 

 

 

월출산 국립공원 천황사지구에 들어선다..

2007년 늦가을 , 한번도 혼자  어딘가를 떠난다는 생각을 못했던 나에게

혼자 떠나며 느꼈던 자유를 잊지 못한다.. 그 가을 월출산은 비바람이 거세

결국은 천황봉 진입을 허락치 않았다..

 

 

오늘은 꼭 천황봉을 거쳐 도갑사나, 경포대쪽의 월남사지를 보리라 마음먹고..

 

 

 

 

 

 

 

숨이 차다.. 아침부터 다산초당과 만덕산을 쉬지않고  다녀와서인지

조금 힘이 부친다. 그래도 오를수록 영암평야가 들어오니, 다시 힘을 내본다..

 

 

 

 

구름다리 바로 밑 삼거리 . 혼자서 데크위에 카메라를 올려놓고

셀카를 찍고 있는데 한분이 웃으며 다가오신다..

쓰레기를 주으러 올라오신 월출산 국립공원 직원분중에 한분이시다.

 

 

 

월출산 국립공원 직원이신 승천님이시다.. 성은 잊었지만

이름은 미소만큼이나 좋아 잊지 못하고 있다.. 바로 국공홈피에 사진 올려드리려 했는데

시기를 놓쳐 결국 보내드리지 못했다.. 승천님.. 여전히

월출산에 계신건지요~~다시 보니 넘 반갑습니다..

 

 

 

여기저기서 셔터 누르기에 바쁘다..

2007년 가을에 이곳에 왔을때도, 날이 흐려

많은것을 담아갈순 없었지만  저 바위산의 웅장함은 숨길수가 없었다..

 

 

 

 

 

 

 

 

 

 

 

 

 

 

 

 

기암괴석과 구름다리.. 많은 산들의 구름다리들을 봐왔지만, 월출산의

구름다리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미소가 아름답던 승천님의 영향이 크지 않을까 싶다..

 

 

 

 

승천님.. 그 뒤로 강진이나 영암,해남에 갈때마다  친절하셨던 승천님 생각이 났답니다.

저에게 좋은 기억으로 월출산을 남겨주셨습니다..

 

 

 

 

승천님과 인사를 하고 나는 천황봉으로 오른다..

 

 

 

 

 

구름다리를 지나면서는  아찔한 철계단이 이어진다.. 

2007년 결정적으로 더이상 오르지 못했던 급경사 철계단의 미끄러움..

오늘정도면 웃으면서 오르리..

 

 

 

 

 

 

경치야 두말할 필요없이 아름답지만 ,계단을 오르락 내리락,

거의 다 왔다 싶으면 또 이어진다.. 

 

 

 

 

 

                            멀리 영암평야도 들어온다.

날이 조금만 더 맑았다면 멀리까지도 선명할텐데..

 

 

 

 

 

그렇게 드디어 정상 천황봉에 선다.. 와~ 기분 너무 좋다..

2007년 정상을 밟지 못했던 비운을 ,오늘 다 보상받으리..~

 

 

 

 

 

 

 

안개가 조금씩 더 짙어진다.. 벌써 시간은 3시 30분..

무위사나 도갑사로의 하산은 어려울듯하다.. 

어쩔수 없이 바람폭포쪽으로 내려가야할것 같다.

하나둘 하산을 시작할 무렵 , 어느 고급 승용차 광고에나 나올법한

중후한 신사분이(50대 초반쯤..) 사진을 찍어주시겠다고 한다..

 

 

 

 

 

 

 

 

 

 

 

 

 

 

 

 

 

그분도 차가 천황사 주차장에 있다해 바람폭포쪽으로 같이 내려선다.

                  오늘이 마지막이 아니기에 , 무위사나 월남사지를 못본다하여

                 서운해 하지는 않기로했다..  남겨둠의 미학으로 다음이 찾아오기를 바래본다.

 

 

 

 

 

바람폭포로 내려가는 길에 ..그분은 걸음이 느리시다. 아니, 많은걸 보신다.

올라올때도 남들보다 1시간 반이나 더 걸렸단 다.. 사진도 많이 찍고, 경치 감상하고

쉬엄쉬엄.. 그런데 오히려 느림이 편하게 느껴진다.. 나마저 여유가 생긴다.

 

 

 

 

구름다리도 보인다.. 이제와서 보니 , 아주 조그마한 성냥개비 하나 걸쳐놓은것 같다.. 

 

그렇게 바람폭포길로 하산해 천황사로 원점회귀한다..

서울서 광주에 출장을 오신거란다.

직원들 먼저 보내고 큰맘먹고 오게됐단다..명함을 받으니 모 속옷회사

임원이시다. 그 중후함이 몸에 베인 분이었다.

 

영암까지만 태워주심 된다했더니,

자기도 서울 가는데 불편하지 않으면

그냥 가도 된다한다.

내가 불편할까봐 기꺼이 뒷좌석에 앉으라 한다..

그 배려가 고마워 , 난 뒷좌석에 편하게 앉아

오는내내 그분과 많은 대화를 나눴다.

 

나보다 열살 이상은 연상이신듯 한데도, 말이나 행동 어느것도

고리타분하지 않았다.. 그렇게 길지만 짧은듯한 시간,서울로 돌아왔다..

그 뒤로 명함을 버리지도, 그렇다고 연락할 용기도 나지않았다

여행자의 마음으로, 한번의 소중한 추억으로 간직하려한다..

 

다산 선생의 길을 따라가본

다산초당과.만덕산 그리고 백련사를 걸으며

나는 오늘 그 시간속에 빠져있었다. 행복했다..

 

그리고 영암 월출산의 멋진 절경속에, 그보다 멋지던 두 사람과의 만남이

오늘을 더 풍성하게 해주었다..

나는 언제나, 남도 답사일번지인 강진 영암 해남으로  떠나는

꿈을 꾸고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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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의 월출산의 나의 모습도 두장 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