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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2012년

해남 두륜산 대흥사로 떠난다..

 

얼마전(2014년 4월) 블로그를 만들면서 지난 산행기를 정리해본다.

우연히 들어오신 님들 , 최근 글이 아니어서 실망할 모습이 미안해진다.

 더군다나 버리려했던 사진과 남기려했던 사진이

모두 바뀌어 사진역시 말이 아니다.

 

 

2012년 6월 3일

홀로 떠나는 네번째 길.

 

93년도쯤.. 유홍준의 나의 문화 유산답사기 라는 

이제까지 보아온 기행문이나 문화재 해설서와는 확연히 다른

책이 한권 나왔다. 우리 국토와 문화재에 남다른 애정으로 쓰여진듯한 그의

답사기에  역사나 문화재에 문외한인 나같은 사람에게도 그곳으로

떠나가보고픈 충동을 일으켰던 획기적인 책이었다..

그 이후, 대흥사라는 곳을 언젠가 가보리라는 생각을 하면서

이번 여행을 하게된 계기가 된다..

 

동서울에서 12시 심야 광주행 버스를 타고 광주터미널에 도착하니,

그동안 다른 지역에선 볼수 없던 새벽임에도  활기가 넘치고

터미널 내부도 깨끗한데다  넓어

새벽에 광주에 도착해도 걱정할 필요가 없을것 같았다.

4시 30분 해남행 버스를 타고 해남에 가서 대흥사행 6시 50분첫차를 타고

매표소 입구에 도착하니 7시 15분쯤..

 

 

       

 

 두륜산 관리사무소가 있는 상가 지역을 지나 대흥사로 향한다.

 

 

 

두륜산 대둔사 현판을 시작으로 구림리 장춘동 숲길은 시작된다..

 

 

 

 

고요한 아침의 숲..  아홉숲에 긴봄이라는 이름처럼 , 계곡을 타고

대흥사로 들어가는 십리길은 소나무, 벗나무, 단풍나무며,해묵은 노목들이

하늘마저 가리는 나무터널로 이어진다..

 

 

 

 

 

 

 

차한대 다니지 않는 시간, 간간이 들어오는 아침햇살과 초록에 취해

맘껏 여유를 즐겨본다..

 

 

 

 

 

 

유홍준 교수때문에 더 유명해진 유선여관이다..

모든 상가가 집단시설지구로 나와있어 ,숲을 보전하는데 한몫하고있다.

유일하게 유선관만은 역사를 말해주듯, 오늘도 

이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영업집임을 말해주듯  수건이 한가득 널려있다..

 기와지붕 위의 풀들도 이채롭다..

 

 

 

 

 

 

호국의병 대사인 서산대사와 그이 문도들 중 13분의 사리가 안치된 부도전이다.↑

 

 

 

 

 

두륜산 대흥사.. 원 이름은 대둔산 대둔사였다고 하나 , 대흥사라 하는사람

대둔사라 하는 사람 , 요즘은 헤깔리기만 하다..

 

 

 

 

 

대웅보전 현판은 명필 이광사의 글씨다.. 김정희가 제주도 귀양길에 들러

조선의 글씨를 망친사람의 것을 현판으로 걸수 있냐며

호통치며 신경질적인 그의 극성에 못이겨, 초의선사가 현판을 떼고 추사의

글씨를 달았다고 한다. 9년만에 그의 유배가 끝나고 서울가는 길에, 대흥사에 다시

들러, 원교 이광사의 현판을 다시 달아달라고 했다..

그때는 잘못보았노라고..

북미륵암 여래좌상,삼층석탑,웅진전 삼층석탑등 ,

문화재에 장님인 내가 봐도 , 소중한 보물들이 많음을 알수 있다..

 

 

 

 

그런데 왠 야자수가 있을까요.. 단순한 조경인지 ,불교적인 의미가 있는건지 궁금해진다.

 

 

 

 

 

 아무도 없는 이른아침,혼자서 셀카를 찍고 있는 나를

 청소를 하시며 분주한 보살님들이 처다보신다..

 

 

 

 

 

 

 

 

 

 

 

북미륵암을 거쳐 오소재,노승봉,두륜산 가련봉으로 가려던 계획은

생각에 빠져 걷는 나를, 표충사를 지나 진불암쪽으로 향하게 했다..

앞서던, 파르라니 깍은 스님의 발자욱을 무심코 따랐던것 같다..

 

 

       

  

 

구름다리다.. 처음엔 위로 건너다가 아찔하여  다시 둘러보니

밑쪽으로 길이 있다.  그래.. 인생도 한번씩 여유를 가지보면

또다른 길이 나올거야..

 

 

 

       

 

바람은 불고 웬 삼발한 여자가 첫 능선위에 올라선다..

 

 

 

 

 

 

 

 

 뒤에 보이는 봉우리가 아마도 두륜봉이겠다.

 

 

 

 

 

 

 

         

 

 

 

 

 

 멀리 정상 가련봉과 능선들..

 

 

 

 

아직 이 두륜산엔 이름모를 새소리와 내 거친 숨소리밖에 없다..

 

 

 

 

울퉁불퉁한 바위에 올려놓고 찍은 셀카 사진들.. 얼굴은 모두 흐릿해도 상관없다

내가 지금 이곳에 왔다는게 중요하니까..

 

 

 

 

 

 

 

         

 

두륜봉을 지나 가련봉으로 가는 만일재.. 가을엔 억새로 장관이단다..

언젠가 꼭 다시 와보리..

 

 

           

 

두륜봉을 오를때도 가련봉을 오를때도, 급경사 암봉들로 밧줄을 타야하고

이런 게단을 많이 올라야 한다.결코 쉬운 산은 아니다..

 

 

 

 

 

정상 가련봉.. 

정상에 도착하니 초행이라는 산객 한분을 만난다.. 서로 인증샷을 찍어주고

그분은 내가 올라왔던 두륜봉쪽으로 내려선다. 오심재에서 출발하셨다고..,

정상에서 두륜산을 실컷 만끽하고 노승봉쪽으로 내려선다..

 

노승봉을 오르는 암벽이 만만치 않은것 같아 우회한다는 것이

엉뚱하게도 천년수쪽으로 내려와 버렸다..ㅠ

 

 

 

 

천년수.. 수령이 무려 1200년~1500년 된 느티나무다..

몰라뵈었습니다..

 

 

 

 

북미륵암으로 다시 올라갈 생각을 못했던게 조금

아쉬움으로 남지만, 그곳을 못봄을 핑계로 이곳에 다시올

충분한 이유를 남겨두는 것이다..

 

 

 

 

 

일지암. 현판은  강암 송성용선생의 글씨다

못보고 지나칠뻔한 일지암.. 초의선사가 칩거(?)하며 지내던곳으로

우리나라 차문화의 성지같은 곳이다.

당대 유명한 시인이나, 명사, 묵객등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했지만

평생의 친구는 동갑내기였던 추사 김정희였다. 김정희 역시 초의선사와

교류하며 차를 배우고, 선사가 보내주는 차 마시기를 제일 좋아하였다. 

초의선사와 나누던 서신을 보면, 선사와 차에 대한 애정이

어떠하였는지를 알수있다..

 

 

 

 

 

 

 

자우산방.

누마루 형식으로 초의선사의 살림채로 연못에 네개의 돌기둥을 쌓아 만들었다..

 

 

 

       

 

 일지암을 지나 대흥사로 내려서서 두륜산을 올려본다..

 하산시에도 더운 날씨 탓인지  등산객은 거의 없었다.

 

 

 

 

 다시 숲길을 따라 걸어본다.. 오후 1시 30분. 등산객이 아닌 나들이객들이

푸르름을 즐기고 있다..

 

 

 

아침에는 포장도로로, 하산해 내려갈때는 오솔길로 걷는다..

편백나무에 취해 한동안 길을 떠나지 못한다..

 

 

 

 

 

가을이면 십리길의 단풍나무숲이 얼마나 아름다울지,

겨울날의 대흥사는 또 어떤풍경일지, 즐거운 상상을 하면서

홀로 떠나는 길 네번째, 두륜산 대흥사 기행을 마친다..

대흥사와, 일지암.. 아는 만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