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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2012년

문화의 향기,경주여행( 남산,토함산 불국사)

 

얼마전(2014년 4월) 블로그를 만들면서 지난 산행기를 정리해본다.

우연히 들어오신 님들 , 최근 글이 아니어서 실망할 모습이 미안해진다.

풍경사진은 모두 사라지고 버리려했던 어설픈 사진 몇장으로 그저 다녀본 길을 더듬어보려 한다.

 

 

 

2012년 6월 20일 수요일.

홀로 떠나는 여섯번째, 경주로 간다.

 

중학교 수학여행때 경주를 다녀왔고 20대때 언뜻, 기억도 잘 안나지만

누군가와 경주를 다녀갔었다.

가기전 경주시청에 관광지도 책자를 신청하니 며칠만에 배송돼왔다.

동서울에서 12시 심야버스를 타고 4시 경주에 도착하니

터미널이 오픈되어 있지 않다. 광주 터미널처럼은 아니더라도

왠만한 도시들은 새벽에 도착하는 사람들을 생각해서 터미널을 개방해 놓는데

하물며 도시 전체가 관광지고, 유적지인 이 도시의 무심함이

조금은 아쉬워진다.. 편의점에 들어가

먹지도 않을 컵라면을 사서 시간을 떼우다 5시가 넘어

택시를 타고 남산 삼릉골에 도착한다.. 조금씩 여명이 들어오기 시작하고

이른 새벽,등산객들도 동네 어르신들도 한두분씩 아침 산행을 시작하고 있다..

 

 

 

남산에 오르지 않고는 경주를 보았다고 말할수 없다라고  할 정도로

남산은 신라 천년의 역사와 문화를 가장 잘 압축해 보여주는 곳이다.

150여곳의 절터와 120여구의 석불, 96여 기의 석탑등이 남아있는 그야말로

노천 박물관이라 할수있다..

 

 

삼릉.  신라 54대 경명왕릉, 53대 신덕왕릉, 8대 아달라왕릉이다. 아름드리 소나무를 끼고

편안히 잠드실것 같은  릉이다.

 

 

 

처음 만나는 불상은 머리가 없어진 석조여래좌상이다..

많은 세월,수난의 시간을 격으면서 머리는 어디메쯤  두고 있을까..

 

 

삼릉계곡 마애관음 보살상.(경북 유형문화재 19호)

아래에서 올려다보니 풍만한 얼굴엔 웃음을 잔뜩 머금고 있고

오른손은 설법인을 표시하여 가슴에 얹었다.

참고로, 마애불이란 , 자연암벽에 글씨나 그림, 불상등을 새기는 것을 말한다.

 

 

옛 선조들이 큰돌을 자를때 구멍을 뚫어 잘랐다한다.. 그런 생각은 어떻게

할수 있었는지,..

 

 

 

삼릉계곡 선각여래좌상.(유형문화재 제150호)

몸체는 모두 선각으로 나타냈는데 얼굴만은 윤곽을 드러나는 돋을새김을 하였다.

 

 

선각육존불(유형문화재 제21호)

널찍한 자연암벽에 새긴 불상으로 마치 붓으로 그림을 그린듯 자유로운

필치가 돋보인다.

 

 

 

삼릉계석조여래좌상 .(보물 제666호)

이 좌상 또한 머리가 분실된것을 계곡에서 찾아 보수정비 한것이다.

온화하면서도 단정한 모습에 눈길이 머문다..

 

 

 

지나면서 다시 석조여래좌상을 담아본다.

 

 

수많은 석불들을 보면서 오른 상선암. 하나라도 놓칠까 지루할 틈이 없다.. 

 

 

잠시 땀도 식히고.. 

 

 

 

금오봉을 0.9km남기고 있다.

 

 

 

 

이곳이 바로 삼릉계곡 마애석가여래좌상이다. 유형문화재 제158호다.

남산불상중 좌불로는 가장 큰 마애불상이다.제일 보고싶었던 곳중 한곳인데,

정작 등산로를 올 2월부터 패쇄했단다.작년인가, 1박 2일 프로에서 이곳을 다녀간뒤

더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았을 것이고 ,. 위험했던 구간이 인파로 인해 더 몸살을

앓았을것은 뻔한 일이다..아쉬운 마음에 멀리서라도 한장 남긴다..

 

 

 

더운 날이다.. 땀으로 머리는 생쥐가 되었다..머리고무줄을 안가져왔다~~쯧.. 

 

 

 

남산 정상 금오봉이다.. 이제 7시 50분밖에 되지 않았다.

아침 햇살에 눈이 부시다.

같은 이름으로 ,구미에 있는 금오산과 헤깔릴수도..

 

 

 

용장사지쪽으로 길을 잡는다.

넓은 잘 다듬어진 임도길도 만난다.

 

 

 

 

 

 

 

바로, 너무 보고싶었던  남산용장사곡 삼층석탑이다.(보물 제 186호)

앞에는 고위봉이 받쳐주고 , 깊고 큰 골짜기에 우뚝 서있는 모습에 매료돼 버린다.

 

 

 

용장사지는 조선초, 매월당 김시습이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인 금오신화를 쓴 곳이다.

또한 단종을 향한 변함없는 충절로 북향화를 심은 곳이기도 하다.

김시습은 이곳 용장사 높은곳에서  얼마나 많은 생각을 했을지..

그리고, 용장사지의 아름다움에 취해 있을 모습도 그려본다..

 

 

 

 

 

용장사곡 석조여래좌상.보물 제187호. 

둥근 형태의 특이한 3층 대좌위에 몸통만 남아있다.삼륜대좌불이라고도 한다.

 

 

 

 

 

 

마애여래좌상이다.보물 제913호..

유려하고 세련된 선의 흐름들이 전체적으로 깔끔하며, 기법은 사실적이면서도

아랫부분의 연꽃무늬가 화려함을 더해주는것 같다..

나는 한참을 이분과 대화를 나누었다..

 

 

 

 

설잠교.. 김시습도 용장마을을 오가며 다녔을 이길을 건넌다..

용장리로 내려와서 버스를 타고

불국사로 이동한다..

 

 

 

중학교때 왔던 수학여행지..

뭘 보고 뭘 느꼈을까.. 

국사시간, 무엇이 청운교 백운교인지, 수없이 외워봐도 알수 없었던 것이

진심으로  들여다보니 외우지 않아도 눈에 들어온다..

 

 

 

 

 

 

청운교와 백운교 국보 제23호.

청운교와 백운교는 불교의 33천세계를 상징하는 33계단으로 이루어져 있다..

 

 

 

 

 

연화교와 칠보교. 국보 제 22호

연화교(아래)는 디딤돌이 10단으로 아름다운 연꽃무늬가 새겨져 있고

칠보교(위)는 7단의 계단으로 금,은,유리등의 일곱가지 보배를 상징한다.

 

 

 

 

 

 

 

왼쪽이 불국사 다보탑이다.국보 제20호.

석가여래의 법화경 설법을 형상화한 것으로,통일신라 조형예술의 극치를 보여준다.

기둥 돌계단위 네마리 돌사자중 세마리는 일제에 약탈되어 현재는

행방을 알수 없단다. 석가탑과 마주하고 두탑중 동쪽에 위치한다.

 

 

 

 

불국사 삼층석탑.(석가탑) 국보 제21호

다보탑과 마주하며 서쪽에 위치한다.석탑전체에 특별한 기교가 없이 간결하고

우아한 통일신라시대 석탑의 대표작이다.1966년 복원중에 무구정광다라니경,

석탑의 사리장치 등 많은 유물이 나왔다.

아사녀가 아사달을 기다리던 영지에 끝내 탑의 그림자가 비추지 않았다하여

무영탑이라고도 부른다.

 

 

불국사는 신라인들의 과학과미학이 이뤄낸

통일신라 문화의 정수이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751년 김대성이 현생의 부모를

위해 창건했다고 한다.

사원예술의 걸작이라 표현하고 싶다..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 유산이다.. 

 

 

다보탑 뒤쪽으로는 공사가 한창이어서 좀 답답한 느낌이 있었다..

 

 

 

 

 

 

 

 

 

세계유산 불국사.. 좀 쉬었다가 토함산 석굴암으로 향한다..

자연석을 다듬어 쌓은 돔위에 흙을 덮어 굴처럼 보이게 한 석굴암은

김대성이 창건하기 시작해 20여년뒤 완성된 석굴사원으로 건립당시는 석불사였다..

나는 석굴암의 종교성,예술성을 잘 모른다.본존불의 위엄도 어렵기만 하다.

이해하기는 아직도 부족함이 많아 오늘은 보지 않기로 한다..

언젠가 석굴사 석불을 다시 찾아 예술정신과 과학으로 빚은 이곳에

감탄과 존경의 마음을 바칠날을 기대해본다..

 

 

 

 

 

 

석굴암을 지나고,  걷기좋게 잘 다듬어진 산책로가

6월의 푸르름과 어우러져 더할수없이 좋은 길이다..

지금도 가끔 이길을 생각하면 상쾌함이 밀려오는것만 같다..

 

 

 

 

 

힘들이지 않고 정상 토함산에 오른다..포항서 오셨다는 부부가

인증샷을 찍어주신다.. 마치 두분의 대화는 싸우는 것처럼 거칠어 보인다.

피식 웃음이 났다. 원래 그쪽 말투가 그래서 그렇지 싸우는게 아니란다.

 

 

 

 

 

 

 

 

 

날은 무더웠지만, 하늘은 더없이 맑고 높은 날이었다..

 

 

 

 

하산길..뭐하는 짓임미?  ㅋ. 날파리(초파리)들이 달려들어 결사적으로 쫒는중..

썬그라스를 껴야겠네..

 

 

 

 

 

거의 다 내려오니 단풍나무 포장길이다..

불국사와 토함산엔 가을단풍이 장관이란다..

버스터미널로 가는 길에서 보니 시내는 온통 문화재다.

안압지를 지나는데 연꽃밭이 장관이다.내려서 둘러보고 싶은 마음 간절했으나

다음을 기약한다. 아직 나는 경주의 10분의 1도 제대로 못봤으니

두고두고 와야할 숙제를 남겨두기로 한다.

경주는 시간을 넘어 문화의 향기를 만날수 있는 곳이었다.

골짜기와 등성이마다 수많은 문화유산이 살아 숨쉬는

노천 박물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