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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진안/장수 천반산 -정여립의 자취를 따라

 

2024년 신간 《그 산에 그 꽃이 핀다》가 출시되었다.

 

‘산’이라는 캔버스 속 

‘꽃’이라는 팔레트

아름다운 천연의 빛깔을 만나 보자.

 

 

 

필자의 산행과 여행에는 늘 들풀꽃나무와 함께했지만

이번 《그 산에 그 꽃이 핀다》에서는 특히나 그 산에서 피어나는 야생화에 초점을 맞췄다.

 

몇 년 뒤면 공항이 생겨 접근성이 좋아질 울릉도는 특산식물과 희귀식물의 집합체로

그 모든 것이 고유종과 희귀함으로 연결된다.

이른 봄의 기운을 느낄 수 있는 가덕도와 비금도는 바다를 낀 그림 같은 풍경에 압도당하게 된다.

가덕도 역시 신공항이 생길 지역이라 달라질 모습에 대한 기대와 우려도 함께 뒤따르게 된다.

야생화로 유명한 석병산과 보현산, 덕유산과 소백산, 화악산 등 그 산지마다의 시그니처 같은

야생화 이야기 그리고 미스터리한 숲, 높은 산지에서나 볼 수 있는 귀한 식생이 즐비한

평창 대덕사 계곡도 담겼다.

 

- ‘책을 내면서’ 중

 

 

 

어느 곳 하나 소중하지 않고 야생화 만발하지 않은 곳이 없지만

그래도 가장 많은 비중을 두어 엮은 것은 울릉도다.

성인봉과 나리분지, 그리고 독도와 관음도 일대를 4월과 6월 두 차례 다녀오며 

육지에서는 접하지 못하는 울릉도만의 특수한 매력을 가득 담을 수 있었다.

 

 

 

 

울릉도 하면 떠오르는 호박엿이 원래는 호박엿이 아닌 이 나무 이름이 잘못 알려진 유래와

보지 못할 뻔했던 헐떡이풀을 어렵게 만난 사연도 전한다.

 

멸종위기종 만큼이나 만나기가 어려워진 우산제비꽃과

울릉도 주민에게 한시적으로 채취가 허용된 울릉산마늘에 대한 이야기

나리분지와 섬말나리 이름이 생기게 된 이야기 등도 실렸다.

울릉도만으로 책 한권을 따로 만들어야 할만큼 이야기가 풍성하다.

 

 

 

희귀식물의 보고, 석병산은 한 계절만으로 표현하기 안타까운 마음이 있어

4월의 석병산 그리고 꽃쟁이들이 가장 많이들 찾는  여름 야생화 편으로 나눠 구성했다.

특히나 여름철 석병산은 말 그대로 희귀식물의 교본이고 집합소를 이룬다.

 

책을 내고나면 늘 아쉬움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2024년 신간《그산에 그꽃이 핀다》는 그런 아쉬움을 채우려 최대한 불필요한 요소들은 줄이고,

나날이 달라지는 식물체계에 대해 게을리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무엇보다 야생화 이야기에 집중하려 했다.

산과 여행, 야생화에 관심 있는 분들께 추천합니다. (2024년 2월 덧붙임)

 

 

~~~~~~~~~~~~~~~~~~~~~~~~~~~~~~~~~~~~♥♣

 

오랜만에 부산 가덕도에 가볼까 하다가 연휴 뒤 피로도가 쌓여

2월 말이나 3월초로 미루고, 한동안 잊고 있던 천반산에 가기로 한다.

아직 천반산을 모르는 분이라면 한번쯤 다녀와도 좋을 산이라 말하고 싶다.

천반산은 비운의 혁명가라 칭하는 정여립과 깊은 연관이 있는 산이기도 하다.

 

대중교통이 그리 좋진 않지만 서울 용산역에서 새벽 5시 10분 KTX를 타고 전주에 가서

전주에서 진안으로 가면 진안에서 장전마을 가는 8시 30분 첫차를 탈 수가 있다.

다음 차는 오후 3시 40분에 있다하니 8시 30분차를 이용해야 한다.

 

등산코스 : 천반산휴양림~천반산(깃대봉)~말바위~송판서굴~뜀바위~죽도~장전마을

(약 8km로 천천히 구경하며 4시간 20분 소요)

 

 

 

장전마을에서 하차해 동향 방향으로 구량천을 따라 5~10분 정도 걸어내려오면

천반산휴양림이 나온다. 저 다리를 건너 휴양림 우측으로 등산로가 있다.

정말 오랜만에 감회가 새로운 곳이다. 오전 9시쯤 되었다.

지나온 장전마을 버스정류장 방향과 위로는 오늘 거닐게 될 천반산 능선이다.

이곳은 동향면 성산리(동향면 진성로)에 속하고, 진안군 상전면과 동향면 소재지 중간쯤에 위치하고 있다.

 

 

 

구량천을 건너오면 휴양림이라기보다는 사설 펜션처럼 보이는

넓직한 공간이 하나 나오고 화장실 옆으로 안내도와 함께 본격적인 등로가 시작된다.

 

 

 

 

이따 죽도로 하산하면 날머리가 장전마을인데

여기 초입을 장전마을이라 표시하여 조금 혼동을 줄 수도 있다.

차라리 여기엔 휴양림 입구라 표했으면 어떨까 싶기도 하다.

 

 

 

이정표의 거리가 조금씩 오차가 있어 보이긴 하지만

정상까지는 2km가 되지 않은 거리라 그리 힘든 길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천반산 정상은 잡목들에 가려 조망이 잘 트이지 않지만

정상을 지나 중간중간 조망터가 있고 뜀바위에서의 조망이 아주 근사하다.

 

 

 

 

얼핏 육산인듯도 싶지만 천반산은 바위와 돌이 많은 산이다.

아직 그 면모를 다 드러내놓고 있지 않지만 물길을 따라 걷다보면

바위 절벽의 아찔함이 함께한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정상 가기전의 바위봉에 오르니 소나무 하나와 주변이 조금 트이기 시작한다.

소나무 좌측으로는 이따 가야 할 천반산 성터 방향의 능선인듯 하다.

 

 

 

무엇보다 이글거리는 고산쪽 하늘이 멋스럽기 그지없다.

가운데 고산, 좌측으로는 대덕산으로 이어진다.

고산 역시 장전마을 옆 죽도고개에서 들머리를 삼아 대덕산과 연계하면 되는 산으로

고산에서의 물길 조망도 천반산 못지 않은 곳이다.

오늘 고산과 대덕산을 이을까 하다가 조금 더 짧은 산행을 하고 싶어 오랜만에 천반산을 택했다.

대덕산 대덕사 방향으로 하산을 하면 용담호와 만나게 된다.

 

 

 

 

고산 우측으로는 국사봉이다.

아래로는 구량천이 감입곡류하며 우리나라 깊고 깊은 산하를 단적으로 보여주는것만 같다.

천반산을 조금 더 길게 걷고 싶을땐 저기 섬계마을에서 들머리를 삼으면 된다.

 

 

 

 

봉화산과 적상산 방향이다.

맨 뒤로는 덕유능선이 살짝 보였는데 사진상엔 잡히지 않는다. 이따 뜀바위에 가서 다시 살펴보자.

목을 쭉 뺀 자라 형상인듯한 겹쳐진 바위도 하나 지난다.

 

 

 

 

정상이 가까워지자 제법이나 눈이 쌓였다.

유명한 산이야 상관이 없지만 많이 알려지지 않은 산지들에선

혼자 걷는 길에 이렇게 눈이 내리고 아무도 지나지 않아 발자국이 없는 길에선 살짝 긴장을 하는게 사실이다.

여기 천반산이야 그래도 이정표며 등로가 대충은 잡히지만 오지산을 걷다가 길을 잘못 들어

고생을 한 기억들이 있어 이런 발자국 하나 없는 설산이 조금은 두려움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아까 말한 섬계마을 갈림길이다. 천반산휴양림에서 시작하는 산행이

짧게 느껴진다면 섬계마을 옆 섬계산장에서 들머리를 삼으면 된다.

 

** 산에 다니다 보면 그리고 이렇게 포스팅을 하다보면 어렴풋 알고 있던

역사적 사실에 대해 다시금 들여다보고 공부도 하게 된다.

여기 천반산은 정여립을 빼놓고 말할 수 없을만큼 깊은 연관이 있다.

정여립은 역모와 음모 사이에 팽팽한 논쟁이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정여립은 전주 남문 밖 명문가 출신으로 어릴때부터 천재 소리를 들었고

선조때 문과에 급제해 벼슬에 나서게 된다.

선조와 서인의 미움을 사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낙향한 정여립은

천반산 죽도에 서실을 차리고 그의 평소 소신대로 양반은 물론 노비, 평민, 스님, 무사 할것없이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함께 대동계를 만들어 활쏘기 대회 등을 열면서 세력을 확장해 나간다.

율곡 이이와 친분이 있었던 정여립이 대동계를 만들고 무력을 키웠던 이유로

이이의 십만양병설에 호응하였기 때문이라는 견해들도 있다.

 

 

 

 

은거한 정여립이 자신을 따르는 일당들과 봉기해 한양으로 진입한다는 비밀장계가 올라왔다.

진짜 역모였다는 설과 반대로 치밀한 음모가 역모가 되었다

이 역모는 조작되었다는 관점이 여전히 공존하며 남아 있다.

어쨌든 민심도 돌리고 정치적인 돌파구를 찾고 싶었던 선조는 결국

서인의 거장 정철을 앞세워 기축옥사를 단행하게 된다.

 

 

 

 

정여립이 대동계를 조직하여 훈련할때 제일 높은 이곳에

대동이라는 깃발을 꽂았다 하여 깃대봉이라 부르게 된 천반산(647m) 정상이다.

천반산(깃대봉) 정상은 나무들이 둘러쌓여 조망은 시원하지 않지만 이따 조망처들이 나오니 아쉬워 할 필요는 없겠다.

 

 

 

 

전북 진안군 동향면과 진안읍, 장수군 천천면의 경계를 이루는 천반산(天盤山) 이름에는 몇가지 유래가 있는데

주능선이 소반처럼 납작하다 하여 소반 반자를 써 이름 붙여졌다는 설과

땅에는 천반, 지반, 인반이라는 명당자리가 있는데

이곳이 천반에 해당되는 명당이 있다하여 붙여졌다고도 한다.

천반산 능선부는 소반처럼 아늑함이 있지만 주변은 깍아지른 절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아래로는 금강과 구량천이 휘감아돌고 있으니 천연의 요새와 같은 산세를 띠고 있다.

 

《광여》 , 《해동지도》, 《1872년 지방도》 등에는 천반산이 아닌 천방산으로 기록되어 있다니

천방산에서 천반산으로 변형이 된게 아닌지 유추하게도 한다.

 

 

 

 

개혁과 역모는 종이 한장 차이라 했던가.

조선의 대표적인 4대 사화를 합친것(500여명)보다도 더 큰 피바람이 있었던 사건.

조선 선비 1000여명이 역모로 몰려 떼죽음을 당해야 했던 바로 기축옥사(1589년)다.

그 기축옥사 핵심이 정여립(1546년~1589년)이었고, 그가 피신와 관군에 쫒기다

자결한 현장이 여기 천반산 죽도였다. 자결이 아닌 죽임을 당했을 여지가 충분하다는 설과 함께

정여립이 자결한 곳은 진안군 부귀면 오룡리 다복동이라는 견해들도 있다.

 

정여립에 대해서는 망을 봤다는 망바위, 말을 타고 뛰었다는 뜀바위,

바둑을 두었다는 말바위 등이 천반산 곳곳에 남아 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기축옥사에 대해 《조선 500년 제일사건》이라 하였고

'이것이 전민족의 항성을 묻고 변성만 키우는 짓이다. 정여립의 이름은 300년 뒤에나 500년 뒤에나 

그 이름이 알려질 뿐이다.'라며 한탄했다.

 

《조선을 뒤흔든 최대 역모사건》의 저자 신정일은 

" 16세기 말 개혁적 선비의 떼죽음은 임진왜란때의 인재 부족으로 이어졌고

나아가서는 조선왕조 몰락의 결정타가 되었다. 

선비들은 더 이상 바른 말을 하지 않았고, 그것은 조선사회를 썩게 만들었다.."라고 하였다.

 

 

 

 

신채호 선생의 말마따나 400년이 훌쩍 지난 지금 그 일을 떠올리며 이 길을 걷고 있다.

"천하는 일정한 주인이 따로 없다."  "누구라도 임금으로 섬길 수 있다."

요즘에야 당연한 얘기겠지만 그 시대에 이런 말을 서슴없이 할 수 있었던 정여립은

어쩌면 이단아였을지도 모른다. 비운의 개혁가라는 수식이 따라붙는 이유일 것이다.

정상을 내려와 성터와 죽도 방향으로 간다.

 

 

 

 

내가 밟은 발자국이 오늘의 길이 될터이니 돌길도 조심조심.

무심코 앞선 발자국을 따라가기 마련~

아무 생각없이 산짐승으로 보이는 발자국을 따르다 잘못 들었음을 인지하고 다시 되돌아와야 했다.

어떤 녀석인지 이리저리 능선을 따라 발자국을 낸 아이가 하나 있었다.

여기 주인장은 나다~영역 순찰이라도 돈것만 같다.

 

 

 

남덕유 자락인 할미봉이 흐릿하지만 잡힌다. 할미봉은 간신히 이곳에서만 볼 수 있었다.

좌측 뒤로 뾰족 봉우리가 할미봉이다. 할미봉 바로 우측으로 둥그런 봉우리가 깃대봉, 

깃대봉 우측으로 살짝 드러난 구시봉, 그 앞쪽이 수락봉....

 

 

 

 

쪼개진 바위를 지나고 세갈래로 갈라진 소나무 앞에 이르자 멋진 조망이 열린다.

이곳에 한동안 앉아 주변을 누려볼 수 있었다.

 

 

 

 

진행해야 할 성터 방향의 능선이다. 

산 능선은 마치 물길을 따라 굽어지듯 우측으로 틀게 된다. 

저 갈빗대 같은 골짜기 골짜기의 빗살무늬도 멋스러움이다.

 

뒤로는 대덕산이다.

가장 높은 봉은 대덕산의 725봉(또는 722봉)이라 하고, 우측의 낮은 곳을 대덕산으로 표하고 있다.

근처에 대덕산이 둘 있는데, 고산과 연계할 수 있는 대덕산과는 다른 대덕산이다.

맨 우측 뒤로는 운장산의 연계산행지인 연석산도 걸렸다.

맨 좌측으로는 짜잔~귀 쫑긋한 마이산도 있었네. 그래~진안하면 마이산이지.

 

 

 

 

진행해야 할 성터와 우측은 대덕산 능선,

좌측으로 너부데데한 능선은 이름도 독특한 독재봉이다.

진안군 상전면에 위치한 산으로 독재봉과 대덕산을 연계해 산행하면 되는데

천반산에서 보는 것과 달리 또 다른 구량천과 죽도를 만나게 된다.

 

 

 

 

좌측 앞줄은 천반산 뜀바위 구간, 뒷줄은 대덕산,

가운데 뒤로는 진안의 대표적인 명산인 운장산 구봉산 라인이다.

우측은 고산과 연계하는 또 다른 대덕산 줄기다.

 

 

 

 

좌측 연석산부터 운장산,동봉, 우측으로 곰직이산, 북두봉, 뾰족한 구봉산이 뚜렷하다.

운장산과 구봉산처럼 해발이 높은 봉우리는 눈이 쌓인게 확연하니

겨울 설경 산행지로 해발 높은 산지들이 인기인 이유이기도 하다.

아직 다 보여지진 않지만 우측 아래쪽 나지막한 능선이 죽도다.

죽도 뒤 금강은 바로 뒤에 있을 용담호와 합류하게 된다.

 

 

 

 

 '정씨가 왕이 되려 한다'는 등 정감록과 정여립을 결부해 소문을 내고

정여립을 역모로 이끈 대표적인 인물은 서얼 출신의 유학자 송익필로 알려져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송익필과 연관된 산이 저기 운장산이다.

운장산에서 수학을 했던 송익필.

그의 자 운장을 따서 운장산, 호 구봉을 따서 지운 이름이 구봉산이다.

악연이었던 두 사람은 죽어서도 같은 진안땅에서 이리 마주하고 있으니 

이 산에 서며 다시금 그들을 떠올려보는 것이다.

 

 

 

 

산 형세를 모르는 누구라도 반갑게 알아볼 수 있는 마이산이다.

더 뾰족한 좌측이 숫마이봉, 더 풍성한 우측이 암마이봉이다.

그리고 그 우측으로 뾰족 솟은 광대봉도 알아볼 수 있겠다.

마이산 좌측으로는 내동산도 자리할텐데 아직은 보이지 않는다.

 

 

 

 

앞쪽 능선은 가막리에서 천반산으로 올라오는 등로다.

가운데와 우측 뒤로 아주 희미하게 보일듯한 봉우리들이 장안산과 팔공산인지는 확실치가 않다.

 

 

 

 

맨 우측으로 마이산, 바로 그 좌측으로 코끼리 엎어져 있는것 같은 독재봉과

가운데 뒤로는 진안 성수산 라인이다.

시야가 좋을때는 성수산 뒤로 팔공데미와 덕태산이 보일텐데 오늘은 드러나지 않는다.

 

독재봉 아래쪽에 가막리가 자리하고 있고,

가막리에서 들머리를 삼아 왼쪽 앞쪽 능선을 따라 천반산에 올라도 된다.

가막리를 들날머리로 삼으면 송판서의 부인이 거처했다는 할미굴을 들르기도 용이하다.

가막마을 앞으로는 금강이 흐른다.

 

 

 

 

그냥 바라만 보는 것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풍경이다. 

한동안 잊고 있던 천반산이 갑자기 떠오른 것은 너무나 큰 행운이었다.

전국의 많고 많은 산, 어디를 가야할까 늘 고민을 하게 되지만

꽁꽁 잊고 지내는 산이 너무나 많으니 이렇게 생각난 것이 고마울 따름이다.

이 조망처에서 한동안 자릴 뜨지 못했다.

 

 

 

걷다가 느낌이 이상해 다시 뒤돌아섰다.

바위인지 흙길인지 분간이 되지 않으니 그냥 지나칠뻔 했다.

안내판은 바닥으로 떨어진데다 눈이 뿌려져 글씨가 보이지 않았다.
정여립이 바둑을 두었다는 말바위다. 다른 계절엔 등이 널찍한 말의 안장을 닮았다는 느낌도 받는다.

 

 

 

 

두번째 조망 좋은 칼날 바위 능선으로 오른다.

옆으로는 천길 낭떠러지, 깍아지른 절벽이니 눈 길에는 더욱이나 조심해야 한다.

 

 

 

 

구량천을 사이로 천반산과 마주하는 우측 고산과 좌측으로는 대덕산의 산줄기.

그리고 아래로는 장전마을과 구량천이 굽이 돌아 흐른다.

마치 건너편 도로(진성로)가 구량천처럼도 보이니 정작 구량천 물줄기가 말라서기도 할 것이다.

수량이 많을때라면 이 물줄기가 더욱이나 아름답게 보일 것이다.

 

 

 

 

고산과 대덕산에서 바라보는 구량천과 죽도, 용담호 등은

또 다른 풍경으로 다가오니 천반산 못지않게 아름다운 산자락이다.

보통 죽도고개에서 들머리를 삼아 날머리는 대덕사 지나 구룡교차로에서 끝을 맺는데

약 12km쯤 된다. 조망도 좋다.

죽도고개는 장전마을 좌측으로 위치하는데, 앞 산자락 우측부터 세번째가 죽도고개 입구다.

 

 

 

 

좌측으로 고산, 우측은 천반산 자락.가운데 뒤로는 국사봉과 봉화산, 적상산 등이 자리한다.

구량천에 빨간 지붕이 있는 천반산휴양림도 보인다.

 

 

 

 

좌 국사봉, 가운데 뒤로는 적상산의 향로봉,

우측 뾰족 올라온 봉우리는 봉화산으로 보인다.

 

 

 

 

들머리였던 천반산휴양림이다.

도로 따라 우측으로 가면 진안군 동향면이 나오고 장수군 천천면이나 무주군 안성면으로 연결된다.

도로 좌측은 진안군 상전면이 나오고 진안읍내로 이어진다.구량천은 넓은데 물줄기가 많이 메말랐다.

 

 

 

 

이따 죽도로 하산하게 되면 천변을 따라 여기 장전마을로 나올 것이다.

좌우로는 다른 대덕산이 자리하고 뒤로는 운장산 구봉산이 받치고 있다.

여기 앞쪽은 구량천이지만 가운데서 좌측으로 죽도 뒤, 눈이 쌓인 곳은 용담호의 하류인 금강이다.

죽도에 대해서는 이따 하산하며 다시 살펴보자.

 

 

 

 

마지막으로 한번 더 운장산과 동봉, 곰직이산과 북두봉, 그리고 구봉산. 

 

 

 

 

천반산 성터에 오른다.

포곡식 석축산성의 형태로 보아 삼국시대의 것으로 추정되고

정여립이 피신하며 군사를 조련한 곳이라고도 전해진다.

주변은 평평하여 군사가 주둔할 만하고, 북동쪽은 깍아지른듯한 절벽이어서 따로 성벽이 필요치 않았을 것으로 보인단다.

 

 

 

 

넓은 면적으로 보아 훈련터와 돌솥이 있었을거라 판단된다는 자리도 있다.

그 이외에도 집터와 망루, 담벼락 같은 흔적들이 곳곳에 남아 있어

여기에 주둔하고 살았을 그 숨결들이 그대로 전해지는것만 같다.

 

 

 

 

데크로 만든 전망대가 있고 송판서굴 갈림길 앞이다.

전망대를 거쳐 바로 죽도와 뜀바위로 가도 되지만 300m 떨어진 송판서굴에 다녀오려 한다.

급한 계단을 따라 내려갔다가 다시 되돌아와야 하는데

눈이 쌓여 계단길을 내려가는 것은 그리  만만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조심조심 계단을 따라 내려오니 송판서굴이 보인다.

송판서굴은 15m 정도의 거리를 두고 쌍굴로 형성되어 있다는데

우측으로 하나의 굴이 더 있어 총 세개의 굴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연안송씨인 송보산 선생은 세종때 예조판서에 올랐었는데

단종이 폐위되고 세조가 왕이 되자 왕위찬탈에 항거하여 관직을 버리고 이곳에 낙향한다.

송판서가 은거하며 수도했다 하여 이름이 붙여진 송판서굴이다.

굴 안에는 가물어도 물이 마르지 않고, 위장과 폐에 좋다는 샘이 있어 들어가 보니

역시나 물이 많이 차올라 있다. 그러나 마셔보고 어쩌고 할 사이도 없이

왠지 굴이 닫힐것 같은 오싹함이 감돌아 바로 뒤돌아 나와야했다.

 

 

 

 

 

송판서가 머문 이후에는 정여립이 대동계원을 데리고 훈련할때도 이용되었다 한다.

천반산에는 송판서의 부인이 머물렀다는 할미굴도 있다.

 

 

 

 

송판서굴을 뒤로 하고 다시 계단 따라 올라서는 길,

오늘 산행 중 가장 힘든 순간이었다.

오가며 남긴 내 발자국들이 그나마 덜 힘들게도, 덜 외롭게도 느껴졌다.

뒤로는 금강과 구량천이 만나는 합류지점이 보이고 죽도도 시야에 들어온다.

죽도는 이따 하산때 더 자세히 보여질 것이다.

 

 

 

 

 

쭉쭉 잘 뻗은 소나무를 그대로 살려 만든 삼거리 전망대로 돌아왔다.

웬만하면 죽도 쪽에서 누구라도 올라왔을법한데 아직도 조용하다.

덕분에 나만이 즐기는 천반산이 되었다.

 

 

 

 

 

대덕산과 아래로는 금강이다.

우측 아래로 죽도와 구량천 물길도 살짝 보여진다. 역시나 뾰드락지 같은 마이산도 따라왔다.

 

 

 

 

숫마이봉과 암마이봉 그리고 우측으로 광대봉 합미성으로 이어지는 마이산과

맨 좌측은 진안의 내동산이다. 내동산 조망도 아주 좋다.

 

 

 

 

두 바위 봉우리를 정여립이 말을 타고 뛰었다고 하는 뜀바위로 건너간다.

저 철계단 아래로는 절벽 낭떠러지다.

철계단을 건너면 뜀바위 조망처가 나오는데 천반산 최고 하이라이트가 아닐까 싶다.

절벽 가까이로는 위험하니 접근하면 클나요~^^

 

 

 

 

굽이도는 구량천과 지나온 천반산이다. 아름답다.

구량천 주변 논밭과 골짜기마다에 뿌려진 백설가루가 더욱이나 부드럽고

운치 있는 천반산을 만들어 놓았다.

 

무엇보다 뒤로는 설산으로 변한 덕유산이 선명히 드러나니 환호의 감탄사도 내질러야 했다.

그러나 막상 사진으로는 에구~어디가 덕유산이여.

이럴때 너무 밝게 나온 저 부분만 포토샾을 해주면 덕유산이 드러날텐데

그것도 제대로 배우질 못하였으니 여러장을 더 찍어보는 수밖에~~

천반산 좌측엔 향적봉과 무룡산 삿갓봉이, 천반산 우측엔 남덕유가 우뚝 솟아 있다.

 

 

 

 

조금 당겨 담아보았다.

이젠 맨 뒤로 설산이 된 덕유산 향적봉이 보이는가.

실제로는 더욱 가깝고도 선명히 보여졌다. 

덕유산 향적봉에서 우측으로 무룡산과 삿갓봉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하늘의 구름이 덕유산인지, 덕유산이 구름인지

마치 덕유산은 신선이 살법한 어느 미지의 세상에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구름과 한 몸이 되니 더욱 그런 느낌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어쨋든 지금쯤 덕유산엔 설경이 대단하겠다.

 

 

 

 

그리고 천반산 우측 뒤로는 우뚝 남덕유가 솟아 있다.

 

 

 

 

내 카메라에 담기에는 한계가 있어 곡선이 아름다운 구량천은 다 담기지 못했고 

눈은 녹아 칙칙함도 감돌지만 그럼에도 지금 이 순간 이 장면이 너무나도 아름답게 다가왔다.

건너편의 고산과 아래로는 장전마을을 휘감아 도는 구량천과 

일률적이지 않게 나눠진 논과 밭 그 모든 것들이 자연스런 한폭의 산수화가 되었다.

사진상 다 표현이 되지 않음이 안타까움이다.

 

이곳이 설산으로 뒤뎦혔을때라면, 그리고 연분홍 봄꽃들이 올라올때라면

단풍 물들고, 연녹음으로 채워질때라면 더욱이나 아름다운 풍경이 되어 있을 것이다.

 

 

 

 

 

이따 죽도에서 천변을 따라 장전마을로 걸어 올 길도 보인다.

다리를 건너면 엄청시리 짖어대는 견공들이 있는 펜션도 보인다.

건너편 도로, 가운데서 바로 좌측 뾰족한 죽도고개에서 고산의 들머리를 삼으면 된다.

고산(875m)은 여기 천반산보다 해발도 높아 더 시원스레 조망이 가능하다.

 

 

 

 

멍하니 넋놓고 바라보고 감탄하고 

다음엔 잊지말고 여름이나 가을쯤 꼭 다시 와봐야겠다 메모도 잊지 않는다.

다음주부터는 본격적으로 남도의 봄소식을 찾아 떠날 계획이라

이것이 마지막 겨울산행이 될 것이다. 오길 잘했다고 스스로 토닥토닥도 해주면서~

 

 

 

 

전망대에서 바라 본 아래쪽 뜀바위다.

이곳을 폴짝폴짝 뛰어다녀 뜀바위라 불렀다면 정여립의 말이 명마였음이다. 

 

 

 

 

정여립은 김제시 금산면 제비산 아래 거처지를 두고 있었다.

정여립이 타고 다녔던 말을 용마라 하는데 그 말이 워낙 빨라서

금산면 상두산에서 6km쯤 떨어진 황산에 활을 쏘면 용마가 더 빠르게 달려가 화살을 물어왔다 한다.

어느날은 화살을 쏘았는데 화살을 가져오지 않자 화가 나서 곧바로 용마의 목을 베었는데

나중에 보니 화살이 용마 엉덩이에 꽂혀 있었단다. 에구구~~

정여립은 자책하며 칼과 함께 용마를 묻었다 하는데 

김제시 금산면 쌍룡마을 앞 논 가운데 무덤이 있다 한다.

 

** 상두산이나 황산은 김제에 현존하는 산이고 지명들이다.

금산면 쌍룡마을 논 한가운데 있다는 무덤은 인터넷에 떠도는데,

찾아봤지만 쌍룡마을이 어디인지 정확하지는 않다. 전해지는 이야기니 과장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만큼 정여립의 영향력이 컸다는 반증일 수도 있을 것이다.

 

 

 

 

계단을 따라 내려서며 바라보는 풍경이 아주 일품이다.

건너편 대덕산과 아래로는 금강이 굽어 흐르고 뜀바위와의 세박자가 그림처럼 펼쳐지는 곳, 천반산이다.

대덕산의 굵은 엿가락 같은 골짜기가 금강과 만나는 지점도 너무나 멋스럽다.

저기 금강 옆 죽도에 외딴집이 있는 것도 보인다.

 

 

 

 

이곳에서 보니 마치 대덕산은 옛 지도의 한반도 지형 같기도 하다.

아래로는 금강이다. 

단순히 위에서 아래로가 아닌 그 굽이굽이를 돌아서도 제 갈길을 찾아가니 물길은 참으로 신비롭다.

왼쪽 뒤 마이산도 빼꼼~

 

 

 

 

마이산과 좌 독재봉, 우 대덕산.

많이 알려지지 않은 산행지를 찾는 분이시라면 독재봉과 대덕산을 연계해보면 좋겠다.

 

 

 

 

가운데 마이산과 왼쪽 뒤로 희미하게 내동산.

내동산(887m)은 주변 천미터가 넘는 산지들을 두루 조망할 수 있는

진안의 명산이다. 산행코스도 길지 않아 사브작사브작 한번 올라갈만 하다.

 

 

 

 

바위봉을 우회해 데크 조망처에 서니 아까 섰던 뜀바위 전망대가 보이고,

우측으로 긴 계단따라 송판서굴 가는 길도 보인다.

아~저 계단 내려설때 좀 아찔하게 느껴졌다. 눈 길 첫 걸음이라 더 그러했을 것이다.

 

 

 

 


오지에 가서 알았다.
저절로 싹트고 피는 풀꽃을

가랑잎 밟고 알았다.
미물처럼 사람도 바스락거림을

풀쐐기에 쏘이고 알았다.
은자처럼 숨어사는 생명을

풀벌레 울음 뚝 그치고 알았다.
천적처럼 무서운 사람을

아름드리 소나무 아래서 알았다.
천년이 한결같은 바람 소리를

풀꽃 지는 걸 보고 알았다.
바람처럼 머물다 가는 사람을

사람 없는 곳에서 알았다.
달빛처럼 그리운 새소리를

 

 

자연율 /권달웅

 

 

 

 

우리의 산하, 참으로 아름답지 않은가.

우리가 미처 다 알지 못해 그렇지, 이 땅 곳곳엔 아름다운 명소들이 너무도 많다.

이런 조망처에 자릴 잡으면 세상의 근심도, 더 부러울것도 없다.

소나무와 벼랑 아래로는 금강이 저리도 유유히 흐르고

건너편엔 골짜기가 매력적인 대덕산까지.

내 발 아래로 죽도의 외딴집도 보인다.

 

 

 

 

천반산과 뒤로 덕유산과 남덕유.

좌측으로는 적상산과 봉화산이 함께하는 이 풍경도 마지막으로 한장 더 담는다.

구량천이 좌측으로 굽이도는 곳에 오전에 올랐던 천반산휴양림이 자리한다.

 

 

 

 

아홉구비를 휘돌아 흐르는 구량천은 금강으로 합류하게 된다.

우측 아래 구량천의 물줄기가 금강과 합류하는 지점이 보인다.

이렇게 자연스레 금강과 구량천이 만나게 되는데

죽도 산줄기 가운데를 잘라 인위적으로 만나게 한 지점도 곧 나올 것이다.

그러니까 우측이 죽도의 시작이다.

 

 

 

죽도로 내려서는 길, 음지엔 아직 눈이 그대로 덮혀 있다.

 

 

 

 

정여립이 생을 마감했다는 죽도로 내려선다.

예부터 대나무가 많아 이름 붙여진 죽도는 구량천이 감입곡류하면서 만들어진 절경지다.

바위절벽이 수려하고 구량천과 금강이 휘감아 도는 곳에 잘록하게 들어간 산허리가

섬처럼 아름다운 곳이었다.

 

그러다 1970년, 구량천 물길을 돌려 논을 만들겠다고 병풍바위 중간부를 폭파하여

산 가운데가 잘려지게 되었으니 섬 아닌 진짜 섬이 되어버린 것이다.

논은 만들어지지 않았으니 물과 물이 만나는 물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결과였을 것이다.

그로인해 병풍바위에 폭포가 만들어졌다.

 

 

 

 

그러니까 좌측의 죽도는 섬 아닌 진짜 섬이 되어버렸고

죽도유원지라는 이름까지 붙여져 오히려 더 유명한 장소가 되었다.

내가 산에 대해 전혀 몰랐을때도 죽도라는 이름은 많이 들어봤으니 말이다.

앞쪽이 구량천, 뒤쪽이 금강이다. 금강은 뒤에 있을 용담호와 바로 만나게 된다.

뒤로는 오늘 함께했던 운장산 구봉산도 대열을 유지하며 따라온다.

 

 

 

 

구량천으로 내려섰다. 죽도 한가운데를 폭파해 구멍이 뚫린 부분이다. 

이제는 마치 원래의 그 모습인양 아무렇지도 않은척 절경을 뽐내고 있다.

 

 

 

 

어쨌든 더없이 아름다운 병풍바위와 그 위로 고고한 소나무 한그루도 

절경 중의 절경이다.

칙칙함을 벗어난 다른 계절에 보면 더욱 빛이 날 것이다.

 

 

 

 

구량천변을 따라 걸어 나간다. 

사람도 차량도 지나지 않은 길에 멍멍이들 몇마리를 태운 트럭 한대가 지나간다.

근처 주민인듯 하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이 계절도 죽도의 절벽은 자체로도 풍경이 된다.

 

 

 

 

천변을 따라 장전마을로 나가는 길,

만들고자 했던 논 대신 갈대가 자리잡은 이 길은 새로운 명소가 되어

천반산은 잘 몰라도 이 길을 따라 가막리유원지까지 트레킹을 하는 사람들도 있고

차박이나 캠핑을 하는 사람들도 많을만큼 죽도라 하면 꽤나 유명지가 되었다. 

훼손이 심해지자 지금은 차단막을 설치해 차량을 통제하고 있는듯 하다.

위로는 오늘 걸었던 천반산 능선과 우측 볼록한 뜀바위 구간도 보인다.

 

 

 

 

죽도 일대를 가막리들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장막이 겹겹이 막은듯한 첩첩산중을 뜻한다.

저 펜션은 운영을 하는건지 어쩐건지 여튼 멍멍이들이 요란하게 짖어댄다.

이 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은 힐링지가 되었다.

 

 

 

 

 

그렇게 장전마을 버스정류장에서 산행은 끝이 난다. 오후 1시 20분쯤 되었다.

뒤로 천반산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어 그런지

이 한장의 샷이 웅장함과 더불어 깊은 오지마을의 대비처럼 인상적으로 남았다.

 

진안행 버스는 오후 12시 5분, 3시 45분에 있어 애매한 시간이다.

다행히 지나는 차량의 도움으로 진안으로 나갈 수 있었다.

다시 찾고 싶은, 물길도 산길도 아름다운 천반산이었다.

다음 여정부터는 이미 봄이 시작된 남도로 떠나려 한다.

 

**다음 블로그가 2022년 9월이면 서비스 종료라는 통보에 수많은 자료들이 사라질까 두려워

급하게 티스토리로 옮기니 많은 분들께서 남겨주신 댓글과 공감도 영원히 사라지게 되었다.

그동안 함께해주셨던 많은 님들께 감사하고 죄송한 마음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