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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북한산 등산코스, 북한산성 문수봉 남장대지- 그산에 그꽃이 핀다.

 

2024년 신간 《그 산에 그 꽃이 핀다》가 출시되었다.

 

‘산’이라는 캔버스 속 

‘꽃’이라는 팔레트

아름다운 천연의 빛깔을 만나 보자.

 

 

 

필자의 산행과 여행에는 늘 들풀꽃나무와 함께했지만

이번 《그 산에 그 꽃이 핀다》에서는 특히나 그 산에서 피어나는 야생화에 초점을 맞췄다.

 

몇 년 뒤면 공항이 생겨 접근성이 좋아질 울릉도는 특산식물과 희귀식물의 집합체로

그 모든 것이 고유종과 희귀함으로 연결된다.

이른 봄의 기운을 느낄 수 있는 가덕도와 비금도는 바다를 낀 그림 같은 풍경에 압도당하게 된다.

가덕도 역시 신공항이 생길 지역이라 달라질 모습에 대한 기대와 우려도 함께 뒤따르게 된다.

야생화로 유명한 석병산과 보현산, 덕유산과 소백산, 화악산 등 그 산지마다의 시그니처 같은

야생화 이야기 그리고 미스터리한 숲, 높은 산지에서나 볼 수 있는 귀한 식생이 즐비한

평창 대덕사 계곡도 담겼다.

 

- ‘책을 내면서’ 중

 

 

 

 

어느 곳 하나 소중하지 않고 야생화 만발하지 않은 곳이 없지만

그래도 가장 많은 비중을 두어 엮은 것은 울릉도다.

성인봉과 나리분지, 그리고 독도와 관음도 일대를 4월과 6월 두 차례 다녀오며 

육지에서는 접하지 못하는 울릉도만의 특수한 매력을 가득 담을 수 있었다.

 

 

 

울릉도 하면 떠오르는 호박엿이 원래는 호박엿이 아닌 이 나무 이름이 잘못 알려진 유래와

보지 못할 뻔했던 헐떡이풀을 어렵게 만난 사연도 전한다.

 

멸종위기종 만큼이나 만나기가 어려워진 우산제비꽃과

울릉도 주민에게 한시적으로 채취가 허용된 울릉산마늘에 대한 이야기

나리분지와 섬말나리 이름이 생기게 된 이야기 등도 실렸다.

울릉도만으로 책 한권을 따로 만들어야 할만큼 이야기가 풍성하다.

 

 

 

희귀식물의 보고, 석병산은 한 계절만으로 표현하기 안타까운 마음이 있어

4월의 석병산 그리고 꽃쟁이들이 가장 많이들 찾는  여름 야생화 편으로 나눠 구성했다.

특히나 여름철 석병산은 말 그대로 희귀식물의 교본이고 집합소를 이룬다.

 

책을 내고나면 늘 아쉬움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2024년 신간《그산에 그꽃이 핀다》는 그런 아쉬움을 채우려 최대한 불필요한 요소들은 줄이고,

나날이 달라지는 식물체계에 대해 게을리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무엇보다 야생화 이야기에 집중하려 했다.

산과 여행, 야생화에 관심 있는 분들께 추천한다.  (2024년 2월 덧붙임)

https://0709im.tistory.com/777

~~~~~~~~~~~~~~~~~~~~~~~~~~~~~~~~~~~~~~~~~~~~~~~~~~♥♣

 

며칠전부터 원주 미륵산에 가려고 계획을 세우고 차표를 예매해 놓은 상태였다.

그러나 아침부터 일이 생겨 원주행은 포기를 해야했다.

산행을 포기하려다 오늘밖에 시간이 되질 않으니

오후에서야 거의 밟아보지 못했던 남장대지능선을 올라보려 구파발역으로 간다.

남장대지라 하면 생소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자주 접하는 장소는 최소화하려 한다.

 

산행코스 : 북한산성탐방센터~중성문~남장대지~청수동암문~문수봉~대남문~구기분소~버스정류장

(약 8.2km로 4시간 20분쯤 소요.)

 

 

 

구파발역 2번출구로 나오니 공무원들인지 공익근무자들인지 여튼 여기저기 눈을 쓰는 사람들이 보인다.

내가 지하철을 타고 오는 1시간 동안에 눈이 좀 내렸나보다.

구파발역에서 704번을 타고 북한산성입구로 간다. 34번을 타도 된다.

불광역이나 연신내역을 이용해도 된다.

 

 

 

 

북한산성입구는 북한산의 대표적인 들머리다.

704번이나 34번은 삼천사, 백화사, 진관사, 효자동, 사기막골 등 북한산 곳곳은 물론이거니와

북한산 조망처인 노고산 흥국사와 솔고개를 비롯 우이령 오봉산석굴암 입구, 송추 등 

북한산을 이용하는 대표적인 버스라 생각해도 무방하겠다.

8772번은 주말만 북한산성까지 운행하는 버스다.

 

 

 

 

가늘게 눈발은 흩날리고 산행을 시작하기엔 좀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이 넓은 북한산에 한두명 올라가는 사람을 본게 전부였다.

 

 

 

 

오랜만에 보는 옥상 위 저 아가씨는 이 추운 날에도 반바지 차림일세..

괜히 아는 사람을 만난것처럼 반갑기까지 하다.~^^ 뒤로는 원효봉이다.

 

 

 

 

초입엔 언제나처럼 이 길을 지키는 의상능선의 의상봉도

오늘은 눈구름떼에 휘말려 새로운 운치로 맞아준다.

 

 

 

 

좌측 계곡을 건너면 원효봉으로 오르는 길이다.

나는 계곡을 끼고 우측 너른 길따라 백운대 쪽으로 가다가 중성문과 대남문 방향으로 빠질 것이다.

이 길 우측 위로는 포장도로 따라 대서문 거쳐 가는 길도 있다.

어차피 북한동역사관에서 만나게 되어 있다. 이정표는 대남문을 따라 가면 된다.

 

 

 

 

계곡을 따라 올라가는 길,

날은 춥고 흐리지만 졸졸 물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시원해지는것만 같다.

 

 

 

 

북한동역사관을 지나고 중성문을 향해 가는 길엔 

더없이 고요하면서도 평온함이 감돌고 있었다.

눈 소식이 반가웠을 사람들의 발자국에도 표정이 덧입혀진것만 같다. 이런 길을 걸을때 기분이 참 좋아진다.

 

 

 

 

높은 언덕배기를 따라 올라서면 중성문이 나온다.

1711년(숙종 37년) 북한산성을 축성한 뒤

숙종은 산성이 완공된 다음 해에 직접 행차하여 둘러보았으니 

다시 전쟁이 일어난다면 백성과 함께 최후까지 항전하겠다는 여민공수론의 의미를 품게 된다.

 

이 행차에서 숙종은 북한산성 북서쪽 지역이 평탄해 적에게 쉽게 함락될수 있으니

다른 성을 더 쌓아 방비하자는 내용의 중성 축성안을 결정한다.

이에 따라 1714년 북한산성 내성에 해당하는 중성을 축조하고 

이 중성의 계곡부에 설치한 시설물이 중성문과 수문이었다. 지금도 계곡엔 수문 흔적이 어렴풋 남아 있다.

 

 

 

 

중성문과 수문 중간으로 조그만 암문이 하나 숨겨져 있는데 시구문이다. 

성 안에서 생긴 시신이 중성문을 통과하지 못하고 이 문을 통해 나간다고 해 시구문이라 불렀다.

그러니까 예전에는 문이 세 개가 있었으니 중성문 시구문 수문 순이었다.

무슨 공사중인지 오늘은 시구문쪽으로 출입을 금해놓았다.

 

** 북한산성에 대해 얘기할때 여기저기 조금씩의 오차가 있어

수문이 1개라고 한 곳들이 많지만, 수문은 서암문(시구문) 옆에 하나 그리고 여기까지 2개였다.

12성문이 맞느니 13~14, 16성문이니 맞느니 말이 많았던 이유 중 하나가

여기 중성문과 수문, 시구문이 들어가는지 안들어가는지 현존하는지 안하는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태고사 앞길을 지난다.

태고사 하면 사찰보다는 저 나무에 걸린 안내판이 먼저 떠오르게 된다.

여기 태고사 앞쪽으로는 여기저기 코스들을 거닐다 많이 밟아보았지만

이제부터 청수동암문 방향으로 가는 남장대지능선은 한두번 하산때를 제외하면 일부러 찾아 오른적은 없었다.

 

 

 

 

대남문으로 가다가 청수동암문 방향으로 우틀하면 된다.

여기부터 의상능선이 만나는 715봉과 청수동암문 가기 전까지는 아주 조용한 산길이 될 것이다.

청수동암문 가는 등로 옆으로는 발굴 공사중인 행궁지가 있는 곳이다.

 

마무리가 될 수 있을까 싶을만큼 몇년째 진행하다 멈추길 반복하고

출입금지 금줄이며 여기저기 토사유실을 막기 위한 비닐이며 어지럽게 공사의 흔적들이 널려져 있다.

내린 눈으로 제대로 보이지 않으니 어지러움도 사라져 버린것만 같다. 

어느 분들은 발굴이 정말 발굴이고 복원인지 북한산 전체를 다 파헤칠 것이냐

시작했으면 토사유실이며 문화재 훼손을 막기 위해서라도 빠르게 진행이 되어야 하는거 아니냐

쓴소리를 하시는 분들도 있다.

 

**행궁이란 임금이 본궁 밖으로 나왔을때 잠시 머무르던 별궁(임시궁궐)을 말한다.

그 행궁이 있던 자리를 복원하는 것이다.

 

 

 

 

행궁지를 지나면서 이 길이 맞나 의심을 하게 된다. 백지가 되어버린 등로.

원래 이 코스가 한적한 길이긴 하지만 오후가 되도록 단 한 사람도 지나지 않은 것이다.

나야 고마운 일이긴 하지만 그래도 한 발 한 발이 조심스러워진다.

 

 

 

 

 

눈송이처럼 너에게 가고 싶다

머뭇거리지 말고

서성대지 말고

숨기지 말고

그냥 네 하얀 생애 속에 뛰어들어

따스한 겨울이 되고 싶다

천년 백설이 되고 싶다

 

문정희/ 겨울 사랑 

 

 

 

 

남장대지가 가까워질수록 바위 무더기들이 나오고 제법이나 가팔라진다.

 

 

 

 

남장대지로 오르다 뒤돌아보니 유후~

너무 흐려서 하늘빛이 보일거란 생각은 조금도 하지 못했다.

우측 동장대부터 용암문을 지나 만경대 백운대로 향하는 길이 연한 수채화처럼 은은하기만 하다.

 

 

 

 

 

조금 당겨본 동장대다.

동장대는 북한산성의 동쪽에 있는 장대로 1712년(숙종38년)에 지어졌다.

장대란 장군의 지휘소로 북한산성에는 남장대와 북장대 동장대가 있었지만

현재는 복원된 동장대만 남아 있다.  지금 오르는 남장대 역시 그 중 하나였다.

 

** 동장대는 최고 지휘관이 사용하던 곳으로 장대 중에서도 가장 중요시되었는데

복원이 잘못되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지금은 2층 누각으로 되어 있으나 일제때 외국인이 찍었다는 사진을 보면 동장대는 단층누각이었다.

수원화성의 서장대는 중층, 동장대는 단층이다.

수원화성 동장대를 참고한다는 것이 혹 착각해 서장대를 참고한게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는 것이다.

그러니 아까 행궁지도 그렇고 많은 유적을 복원한다는 것에

불신을 보내는 사람들이 생기는 이유도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북한산 수뇌부도 짜잔~

흔히들 북한산 총사령부라 부르는 봉우리들이다.

절로 경례를 올려야 할것만 같은 웅장함이 있다.

좌측 정상인 백운대와 그 앞으로 노적봉이 마치 하나의 봉우리인듯 겹쳐 보이고

백운대 우측으로는 만경대와 용암봉이다. 백운대와 만경대 가운데 뒤로 빼꼼 인수봉도 모습을 드러낸다.

 

 

 

직접 거닐때 더 스릴 있고 암릉맛이 좋은 의상능선도 보이기 시작한다.

에스컬레이터바위가 있는 나월봉으로 보인다.

 

 

 

 

제법 높이 올라왔다.

대남문과 대성문을 지나고 보국문 대동문 용암문 백운봉암문으로 이어지는 산성길과

좌측으론 북한산 정상부다.

백운봉암문은 백운대와 만경대 아래에 자리하는 암문으로 예전엔

아니, 몇년전까지만 해도 위문으로 불리던 곳이다.

 

 

 

 

북한산 정상부는 볼때마다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백운대는 기본이요, 인수봉과 만경대, 용암봉과 노적봉 

어느 봉우리 하나 멋지지 않은 곳이 없으니 이만한 산을 찾기도 어려울 지경이다.

물론 설악에 서면 설악이 최고요~지리산에 서면 지리산이 최고겠지만

이렇게 도심속에 이런 바위산이 쉬운 일인가 말이다.

입이 마를만큼의 칭찬도 아깝지 않은 북한산이다. 만경대에서 보는 백운대가 또 아주 일품이다.

 

 

  

 

이 나무를 보니 남장대지가 가까워졌다 싶다.

어떤 분들은 사랑나무라 하고, 어느 분은 의자나무, Y자나무 등등..

 

 

 

 

아무도 밟지 않은 눈길을 걷는 기분이란 상상 이상의 희열이 뒤따른다.

유쾌 상쾌를 넘어 오늘만큼은 내가 이 길의 개척자가 되고 선구자가 된다. 

이 순간만큼은 더 바랄것도 부러울것도 없다.

 

 

 

 

겨울에는 더러

하늘이 흐리기도 해야 맛이다.

 

아주 흐려질 때까지

눈 아프게 보고 있다가

설레설레 눈 내리는 모양을 보아야 맛이다.

 

눈이 내리면

그냥 보기는 심심하고

뽀독뽀독 발자국을 만들어야 맛이다.

 

눈이 쌓이면

온돌방에 돌아와

콩비지 찌개를 훌훌 떠먹어야 맛이다.

 

찌개가 끓으면

덩달아 웅성대면서

마음에도 김이 자욱히 서려야 맛이다.

 

 

겨울 맛 /강세화

 

 

 

그렇게 남장대지 조망처에 서니 대성문에서

보국문과 대동문 동장대로 이어지는 산성주능선이 건너편에 바짝 다가와 섰다.

지형이 높고 사방을 관측하는데 유리한 장소에 세워졌다는 장대 특성대로 사방이 트이기 시작한다.

날이 흐리니 북한산 이외에는 보이는게 없어 아쉬울 수도 있지만

이런날은 멀리까지 보려 애쓰지 않으니 피로하지 않아서 좋긴 하다.

우측 뒤 튀어나온 봉우리는 칼바위능선이다.

 

 

 

 

우측은 대남문으로 착각할 수도 있지만 대성문이다. 대남문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뒤 유사시에 대비해 1711년(숙종 37년) 만들어진 북한산성은

지형에 따라 적절히 축성방식을 달리해 성벽을 쌓았으니

현대의 그 고급진 기술과도 바꿀수 없는 귀한 유산이 되었다.

 

군사 지휘소인 장대를 세곳(동장대,북장대,남장대)에 두었고

큰 대문(성문) 6개소(북문,대동문,보국문,대성문,대남문,대서문,) 암문 8개소와 수문 2개소를 두었고

130칸 규모의 행궁과 병사들의 머무는 초소인 성랑이 143개소나 있었다니

그 규모면에서도 놀랍지 않을수가 없다.

승군을 주둔시키기 위한 승영사찰을 13개소 두었던 것이

오늘날 북한산에 사찰이 많아진 이유에도 한몫했을 것이다.

 

 

 

 

북한산은 암봉으로만 된 산처럼도 느껴지지만 이처럼 산성길이 길게 이어지니

다채로운 길을 걸어볼 수가 있다.

뒤로는 도봉산 수락산 불암산이 세트처럼 따라붙고

수도권의 명산들도 함께할텐데 오늘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남장대지는 그저 안내문 하나만 남았다.

아까 말했듯 북한산성엔 3개의 장대가 있었으나 동장대만 남았고, 남장대와 북장대는 터만 자리하고 있다.

나무들이 자라나 지금은 남장대지가 막혀 있지만, 그 옛날엔 잡목들이 없어 시원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의상능선의 실한 암봉들이다.

좌측 나월봉에서 증취봉 용혈봉 용출봉 의상봉으로~

의상봉이 안보이는듯도 하지만 우측 뒤로 겹쳐진 봉우리가 의상봉일듯 싶다.

좌측 나월봉의 에스컬레이터바위도 오르내림이 재미나다.

북한산 많은 코스가 있지만 바위산을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의상능선은 꼭 한번 다녀오시라 권하고 싶다.

봉우리 봉우리 넘을때마다 쾌감과 스릴이 상당한 곳이다.

의상능선 사이 사이에 가사당암문과 부왕동암문이 자리한다. 의상능선을 걷다가 그 암문에서 중탈이 가능해진다.

 

 

 

 

좌측은 의상능선이 이어지고 가운데서 우측으론 원효봉과 염초봉이다.

의상능선보다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원효봉도 아주 볼만하다.

넓고 풍만한 바위지대가 날카로운 의상능선과는 또다른 매력으로 다가오는 곳이다.

가운데 뒤에 있는 산은 북한산 조망처로 손색없는 노고산이다.

 

 

 

 

좌측 의상능선, 그 우측으로 원효뵹과 염초봉 그리고 백운대와 만경대 등

북한산 정상부의 암봉들이 줄지어 늘어섰다.

날은 흐리지만 오히려 은은함이 풍겨 나는 더 편안하게 느껴진다.

오늘 나의 컨디션에 비춰봤을때 더 화창한 날이라면 왠지 괴리감이 느껴질것만 같다.

 

 

 

 

 

한동안 잠잠하던 미세먼지가 또 기승이니 오늘은 미세먼지 없는 것으로도 감사한 날이다.

이 길은 진달래가 많아 초봄에 찾아도 아름다운 곳이다.

저 암봉들과 어우러져 환상의 케미를 이룰 것이다.

 

 

 

 

의상능선은 나월봉을 지나면 좌측 치성의 형태로 된 나한봉에 닿는다.

치성은 성곽 일부를 네모나게 돌출시킨 형태를 말하는데

적들을 쉽게 진압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한다. 

치성의 치가 꿩 치(雉)자를 쓰는데 성곽 형태가 꿩 머리처럼 돌출되었다 하여 이름 붙여졌다.

 

 

 

 

좌측 715봉과 우측으로 나한봉이다.

715봉은 상원봉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북한지》에 '행궁은 상원봉 아래 좌신으로 있다'

'상원봉은 문수봉 북쪽에 있다'라는 기록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상원봉은 임금이 머무르는 봉우리라는 뜻이다.

 

715봉(상원봉)에도 성랑지가 있다.

북한산성 안에는 143곳의 성랑이 있었는데 성랑이란 성곽에 딸린 초소 건물이자 병사의 숙소였다.

북한산성 성랑터에서 기와파편이 다량 출토된 것으로 보아 성랑의 지붕에

기와를 얹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한다.

 

 

 

 

우측 715봉(상원봉), 그리고 좌측 부리처럼 튀어나온 암봉이 문수봉이다.

그 중간 들어간 곳에 청수동암문이 있다.

715봉 넘어 청수동암문 거쳐 문수봉으로 갈 것이다.

문수봉은 일반인이 올라가기 어려워 그 아래 좌측 암반에 문수봉 정상석이 세워져 있다.

 

 

 

 

 

우측 문수봉과 가운데 뒤가 보현봉이다. 보현봉 좌측 아래로 슬쩍 대남문도 잡힌다.

 

 

 

 

715봉을 넘어와 청수동암문에 이른다.

북한산성 8개 암문은 비상시에 병기나 식량을 반입하는 통로로

때로는 구원병의 출입로로 활용된 일종의 비상출입구였고

성곽에서 깊숙하고 후미진 곳, 고갯마루나 능선에 설치했다.

그래서 암문에는 문루를 세우지 않고 조그만 문만 뚫려 있는 것이다.

 

 

 

 

청수동암문에서 300m 떨어져 있는 문수봉에 오른다.

문수봉(727m)은 대남문과 청수동암문 사이에 우뚝 솟은 봉우리로 

비봉능선과 의상능선의 연결고리이자 꼭짓점이 된다.

 

 

 

 

저 암봉이 문수봉 정상이지만 오르지 못하니 밑에 정상석을 세워둔 것이라는게 일반적이지만

정상석이 세워진 암반을 문수봉, 저 건너편 더 높은 바위를 따로이 칠성봉이라

칭하는 분들도 있다. 

칠성봉은 언제부터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어쨌든 저 정상 암봉은 간혹 오르는 사람도 있지만 위험해 통제하고 있다.

 

 

 

 

 

연화봉과 뒤로는 비봉능선이다. 

연화봉으로 내려가다 바라보는 여기 문수봉과 주변 바위들도 아주 볼만하다.

좌측에서 두번째 바위는 연꽃바위, 두꺼비바위라 불리기도 하고

머리 없는 불상을 보는것도 같고, 성화 모양 같기도 하다.

연화봉과 승가봉 지나 사모바위와 비봉도 보인다. 국립공원의 위상에 맞게 하나같이 바위 좋은 곳곳들이다.

 

 

 

 

 

북한산에서 기가 세기로 유명하다는 보현봉이다.

그래서인지 기도처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가 있다.

무슨 의식을 치르는 것인지 기도를 하는 것인지 큰소리로 주문을 외는 사람들도 볼 수가 있고

촛불을 켜놓은 모습 등도 보게 되니,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위험하지도 않은데 비탐방으로 지정한 원인도 되었을 것이다.

여튼, 보현봉에서 바라보는 여기 문수봉과 아래 문수사가 절경처럼 다가오는 곳이다.

보현봉 우측으로 있는 봉우리는 사자봉이다.

 

 

 

 

 

개인적으로 내가 문수봉에서 가장 매력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래로 빨려들어갈것 같은 이 바위다.

아찔하면서도 그 아래 자리잡은 문수사의 평온함이 대비를 이루니 늘 감탄을 자아내곤 한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는 것은 금물. 클나요~^^

 

 

 

 

 

좌측 보현봉과 사자능선이 겹쳐지고, 우측으론 연화봉. 그 아래로는 구기동계곡이 흐르게 된다.

저 길을 따라 구기탐방센터로 하산하려 한다.

 

 

 

 

남쪽에서는 이미 복수초 소식도 들리지만 먼 나라 얘기처럼 들리기도 한다.

이왕이면 전국의 많은 산을 골고루,

행여 식상해질까 서울과 수도권의 산은 자주 찾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어쩔 수 없이 멀리 떠나지 못할땐 최고의 선택이 되어주는 북한산이다.

 

요즘은 전국 어디나 걸을 수 있는 산과 숲이 잘 조성되어 있으니

참으로 좋은 세상에 살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대남문이다.

대남문은 북한산성의 가장 남쪽에 있는 성문으로 산성이 축성된 해에 지어졌다.

대남문은 비봉능선을 통해 도성의 탕춘대성과 연결되는 전략상 중요 성문이었다 한다.

상부의 소실되었던 문루는 1991년 복원한 것이다.

 

 

 

 

오랜만에 대남문에서 구기분소로 하산한다.

구기분소에서 버스정류장까지는 거의 2km를 더 내려가야 한다.

최대한 아껴쓴다고 사진도 덜 찍었지만 날이 추우니 밧데리도 쉬 방전이 되어버린다.

수명이 오래된 밧데리라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구기동으로 하산하며 마지막으로 담은 사진이다.

이쪽은 햇살이 좋은지 눈이 거의 다 녹았다. 뒤돌아 본 연화봉과 문수봉이다.

설경도 좋고 겨울산도 좋지만 봄소식이 그리워지는 요즘이다.

다음 포스팅엔 남도 소식도 전해드릴께요~

 

**다음 블로그가 2022년 9월이면 서비스 종료라는 통보에 수많은 자료들이 사라질까 두려워

급하게 티스토리로 옮기니 많은 분들께서 남겨주신 댓글과 공감도 영원히 사라지게 되었다.

그동안 함께해주셨던 많은 님들께 감사하고 죄송한 마음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