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그늘
툭하면 아버지는 오밤중에 취해서 널브러진 색시를 업고 들어왔다.
어머니는 입을 꾹 다문 채 술국을 끓이고할머니는 집안이 망했다고
종주먹질을 해댔지만, 며칠이고 집에서 빠져나가지 않는 값싼 향수내가 나는 싫었다.
아버지는 종종 장바닥에서 품삯을 못 받은 광부들한테 멱살을 잡히기도 하고,
그들과 어울려 핫바지춤을 추기도 했다.
빚 받으러 와 사랑방에 죽치고 앉아 내게 술과 담배 심부름을 시키는 화약장수도 있었다.
아버지를 증오하면서 나는 자랐다.아버지가 하는 일은 결코 하지 않겠노라고
이것이 내 평생의 좌우명이 되었다.
나는 빚을 질 일을 하지 않았다.
취한 색시를 업고 다니지 않았고, 노름으로 밤을 지새지도 않았다.
아버지는 이런 아들이 오히려 장하다 했고 나는 기고만장했다.
그리고 이제 나도아버지가 중풍으로 쓰러진 나이를 넘었지만
나는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한 일은 없다.
일생을 아들의 반면교사로 산 아버지를 가엽다고 생각한 일도 없다.
그래서 나는 늘 당당하고 떳떳했는데 문득 거울을 쳐다보다가 놀란다.
나는 간 곳이 없고나약하고 소심해진 아버지만이 있어서
취한 색시를 안고 대낮에 거리를 활보하고 호기있게 광산에서 돈을 뿌리던 아버지 대신,
그 거울속에는 인사동에서도 종로에서도 제대로 기 한번 못 펴고
큰 소리 한번 못 치는 늙고 초라한 아버지만이 있다.
-신경림-
여러분의 아버지는 어떤 모습이었습니까~
누구나 한번쯤 아버지를 미워하며 자란 기억이 있을 것이다.
어머니의 말 못할 한숨소리를 들으며 아버지를 증오하기도 하였을 것이고..
아버지의 권위적인 태도와 무능과 한심을 탓하기도 하였을 것이다.
그러다 아버지의 나이보다 더 늙어버린 지금..
아버지의 그런 추한 모습뒤로 숨겨졌던 가장의 고뇌와 고독,
그리고 삶의 무게를 비로소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아버지를 이해하게 되진 않았을까~~
~이런 날이 되면 한번쯤 아버지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한때 호기 넘치고 목소리 카랑카랑했던 아버지..
그 아버지 대신,
이제 힘없고 병약하고 눈물 많아진 안쓰러운 아버지만이 있다..
그 아버지가 오늘은 가엾고 마음 아프다.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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