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신간 《그 산에 그 꽃이 핀다》가 출시되었다.
‘산’이라는 캔버스 속
‘꽃’이라는 팔레트
아름다운 천연의 빛깔을 만나 보자.
필자의 산행과 여행에는 늘 들풀꽃나무와 함께했지만
이번 《그 산에 그 꽃이 핀다》에서는 특히나 그 산에서 피어나는 야생화에 초점을 맞췄다.
몇 년 뒤면 공항이 생겨 접근성이 좋아질 울릉도는 특산식물과 희귀식물의 집합체로
그 모든 것이 고유종과 희귀함으로 연결된다.
이른 봄의 기운을 느낄 수 있는 가덕도와 비금도는 바다를 낀 그림 같은 풍경에 압도당하게 된다.
가덕도 역시 신공항이 생길 지역이라 달라질 모습에 대한 기대와 우려도 함께 뒤따르게 된다.
야생화로 유명한 석병산과 보현산, 덕유산과 소백산, 화악산 등 그 산지마다의 시그니처 같은
야생화 이야기 그리고 미스터리한 숲, 높은 산지에서나 볼 수 있는 귀한 식생이 즐비한
평창 대덕사 계곡도 담겼다.
- ‘책을 내면서’ 중
어느 곳 하나 소중하지 않고 야생화 만발하지 않은 곳이 없지만
그래도 가장 많은 비중을 두어 엮은 것은 울릉도다.
성인봉과 나리분지, 그리고 독도와 관음도 일대를 4월과 6월 두 차례 다녀오며
육지에서는 접하지 못하는 울릉도만의 특수한 매력을 가득 담을 수 있었다.
울릉도 하면 떠오르는 호박엿이 원래는 호박엿이 아닌 이 나무 이름이 잘못 알려진 유래와
보지 못할 뻔했던 헐떡이풀을 어렵게 만난 사연도 전한다.
멸종위기종 만큼이나 만나기가 어려워진 우산제비꽃과
울릉도 주민에게 한시적으로 채취가 허용된 울릉산마늘에 대한 이야기
나리분지와 섬말나리 이름이 생기게 된 이야기 등도 실렸다.
울릉도만으로 책 한권을 따로 만들어야 할만큼 이야기가 풍성하다.
희귀식물의 보고, 석병산은 한 계절만으로 표현하기 안타까운 마음이 있어
4월의 석병산 그리고 꽃쟁이들이 가장 많이들 찾는 여름 야생화 편으로 나눠 구성했다.
특히나 여름철 석병산은 말 그대로 희귀식물의 교본이고 집합소를 이룬다.
책을 내고나면 늘 아쉬움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2024년 신간《그산에 그꽃이 핀다》는 그런 아쉬움을 채우려 최대한 불필요한 요소들은 줄이고,
나날이 달라지는 식물체계에 대해 게을리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무엇보다 야생화 이야기에 집중하려 했다.
산과 여행, 야생화에 관심 있는 분들께 추천합니다. (2024년 2월 덧붙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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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겨울 진고개~대관령 이후 1년만에 북쪽 대간길을 이어본다.
동서울터미널에서 아침 6시 40분 첫차를 타고 횡계에 가니 9시 20분쯤.
횡계에서 대관령 가는 버스는 9시,10시 10분이라 하니 시간이 어중간하다.
올 여름 횡계에 들렀을때는 9시 30분차로 되어 있었는데 또 바뀌었나 보다.
동서울에서 같은 버스를 타신 분들과 합승해 대관령으로 간다.
오대산이 있는 진부를 넘어올때만 해도 눈이 전혀 보이지 않아 조금 실망한 마음도 있었는데
횡계에서 대관령으로 향하니 이곳은 완전 눈세상으로 바뀌어 있었다. 대관령마을휴게소 전경이다.
와우~올해 첫 눈을 보는 것인데 그야말로 설국이 따로 없다.
내린 눈이 가장 아름답다 느낄때가 나무 형태 그대로 설화로 피었을때다.
그리고 그 설화를 빛내주려는 파란하늘까지 합세하니 최상의 날이 된 것이다.
선자령 등산로 입구에서 내려 산행준비를 하시는 님들.
횡계에서 대관령까지는 택시비 9천원 정도가 나오는데 세명이 탔으니 3천원씩 지불하면 된다.
천원짜리가 없어 내 것까지 지불해 주신 님, 대신 음료수라도 사드리려 하였으나 괜찮다며 사양하신다.
감사했답니다. 황홀한 선자령 즐기시와요.
초입부터 너무 아름다워 수없이 셔터를 누르고서야 내가 가야 할 능경봉 들머리쪽으로 이동해야 했다.
오늘같은 날은 차량의 붉은 색이 더욱이나 돋보인다.
평창한우마을이 어쩌다 오늘 ppL(방송이나 영화에 특정상품이 소도구로 소개되는 일)이 되었다.
평소라면 담지 않고 지나칠 길거리의 모든것이 그림엽서가 된다.
오늘 대관령 닭목령 산행계획을 세우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어디 물어볼만한데가 없어 미안하지만 가장 확실한 양떼목장에 전화해 여쭈니
전날 눈이 내렸다는 이야기를 들을수 있었다.
물론 기상청 예보가 있긴 하지만 그 예보와 달리 현장에 가면 전혀 다른 모습일때가 많았다.
양떼목장을 못 간 대신에 하산해 다른분께 많이 소개해 드렸으니 쌤쌤이쥬~^^
능경봉 들머리인 신재생에너지전시관과 영동고속도로 준공비가 있는 곳으로 건너왔다.
대관령이야 워낙 유명한 곳이니 평소에도 차를 타고 지나다 들르는 사람이 많은 곳이지만
오늘같이 설경을 만났을때야 그 횡재한 기분은 이루 말할수가 없을 것이다.
게다가 내린 눈이 그치고 하늘까지 맑게 개어줬으니~
2001년 영동고속도로가 4차선으로 확장되면서 터널이 뚤리고
예전 대관령휴게소 자리는 지금의 저 신재생에너지전시관이 된 것이다.
그리고 아까 그 대관령마을휴게소가 선자령 들머리가 되었고
육교로 이어진 이쪽은 능경봉과 고루포기산 제왕산 들머리인 것이다.
모든게 눈꽃세상이 되었으니 준공비든 인공구조물이든 순화된듯 아름답지 않을수가 없다.
1975년에 세웠다는 영동고속도로 준공비에서 인증 한장 날리고
아이젠을 하고 본격적으로 산길로 접어든다.
이 설경이 아까워 인증샷도 무지 날려야 했으니 이해해 주시와요~^^
입구부터 설경에 취해 대관령 이야기도 마저 하지 못했다.
해발 832m 대관령은 강릉시 성산면과 평창군 대관령면 사이에 위치해 있고
옛날 강릉에서 서울이나 영서지방으로 갈때 넘나들던 큰 관문이었다.
고개가 험해서 오르내릴때 대굴대굴 크게 구르는 고개라는 뜻의 대굴령에서 대관령이 되었고
영동지방으로 오는 큰 관문에 있는 고개라는 뜻에서 유래하였다고도 한다.
요즘에도 눈 많이 내리기로 유명하고 대관령 하면 모르는 사람 없을만큼
대표적인 큰 고개인데 그 시절에는 어떠했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음이 있다.
그 험지였을 대관령이 오늘날, 겨울이면 외면 못할 매력적인 관광지가 된 것이다.
강릉에 사신다는 님, 올 겨울 눈 소식 있을때마다 이미 여러번 대관령을 방문하셨다 한다.
말 안듣는 스틱을 좀 빼줄 수 있는지 부탁드리니 연세가 좀 있으셨는데도 역시 남자는 남자셨다.
아예 움직이지 않아 빠지지 않던 스틱이 완전히는 아니지만 그래도 7~8cm 정도 길어졌으니
오늘 사용하기엔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감사요~
서울에도 첫 눈 포함, 한두번 조금씩 내렸다 하는데 나는 흔적도 보지 못했다.
내린 양이 너무 적어 금새 녹았거나 내가 서울에 없었을때였거나..
올해 첫 눈을 이렇게나 풍성하게 맞았으니 산행이고 뭣이고
어린아이가 된 듯 신이 났다. 바람에 간간이 흩날리는 눈가루는 또 어찌나 시원하던지.
이 황량한 계절에 단순히 주문진과 강릉의 앞바다가 보이는 풍경은 그닥 눈길이 가지 않았을수도 있다.
앙상한 가지였을 이 곳에 천사가 강림하여 모든게 꽃이 되었다.
눈 내리면 질척거리고 치워야 하니 꺽정스럽다는 님들도
이 순간만큼은 어린시절 동심의 세계로 빠져보자구요.
오늘처럼 눈이 쌓인 날이라면 너무 늑장을 부리면 아니될텐데
능경봉까지만 가신다는 강릉님과 발을 맞추고 있으니 이래도 되나 싶다.
한두분씩 내려오는 분들이 있어 어디에서 오시는지 여쭈니 능경봉에서 비박을 하고 다시 내려오거나
모두 가벼운 차림으로 능경봉까지만 다녀오시는 길이라 했다.고루포기산에서 오신다는 분은 만날수가 없었으니
닭목령으로 가는 길이 뚫렸을지 걱정이 되긴 한다.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기로 하고
파란 하늘과 순백이 이토록 눈이 부신데 어찌 그냥 두고 지나칠수 있겠는가.
이 기분 이대로 즐길수 있을때 마저 더 원없이 누려보고 가자.
여기 임도에서 좌측으로 계속 가면 제왕산으로 가는 것이고
우측 산길은 능경봉과 고루포기산 가는 길이다.
오늘은 제왕산이든 어디든 설경의 끝판왕을 볼수 있을만큼 아름답겠다.
치렁치렁 소나무에도 한가득 내려 앉으셨고
어딜 둘러봐도 동화의 나라에 온 듯한 흰 세상이 되었다.
비박하고 내려오시는 분들은 간밤에 포근히 내렸을 눈의 소리를 들을수 있었겠다.
능경봉으로 오르는 도중, 좌측 제왕산도 슬쩍 보여진다.
제왕산 정상의 멋드러진 소나무도 일품이고
제왕산에서 바라보는 선자령과 일대 설경도 참 아름다운 곳이다.
능경봉 가는 길의 설경.
너무 황홀하여 하늘을 바라보고 와~와~거리며 감탄을 하니
벌어진 입 안으로 사르르 눈이 녹아든다. 달콤하다. 부드럽다.
예전엔 오늘같이 설경이 아름다운 날이면 특히나 첫 눈을 만나는 날이라면
그 설렘으로 기대감으로 괜한 기다림에 빠지기도 했었다.
사람들은 왜 첫눈이 오면 만나자고 약속을 하는 것일까.
사람들은 왜 첫눈이 오면 그렇게들 기뻐하는 것일까.
왜 첫눈이 오는 날 누군가를 만나고 싶어 하는 것일까.
아마 그건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첫눈이 오기를 기다리기 때문일 것이다.
첫눈과 같은 세상이 두 사람 사이에 늘 도래하기를 희망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한때 그런 약속을 한 적이 있었다.
첫눈이 오는 날 돌다방에서 만나자고
첫눈이 오면 하루종일이라도 기다려서 꼭 만나야 한다고 약속한 적이 있다.
그리고 하루종일 기다렸다가 첫눈이 내린 밤거리를 밤늦게까지 팔짱을 끼고 걸어본 적이 있다.
너무 많이 걸어 배가 고프면
눈 내린 거리에 카바이드 불을 밝히고 있는
군밤장수한테 다가가 군밤을 사먹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약속을 할 사람이 없다.
그런 약속이 없어지면서 나는 늙기 시작했다.
약속이 없지만 지금도 첫눈이 오면 누구를 만나고 싶어 서성거린다.
다시 첫눈이 오는 날 만날 약속을 할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첫눈이 오는 날 만나고 싶은 사람,
단 한 사람만 있었으면 좋겠다.
-정호승의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듯
첫눈이 내릴때 그리운 얼굴이 떠오르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일 것이다.
시인이 살던 시대의 돌다방이며 카바이드 같은 단어들은 낯설게 다가오지만
느꼈을 그 감정들은 그대로 전해지는듯 하다.
이 시의 킬링포인트는
‘그러나 지금은 그런 약속을 할 사람이 없다.
그런 약속이 없어지면서 나는 늙기 시작했다.’
이 말이 왜 이리도 공감이 가는지, 어느 순간부터 첫눈이 오는지 마는지
연말연시나 크리스마스가 지나가든 삶이 크게 달라지는건 없었다.
어느새 얼굴엔 주름이 깊어져가고 외모보다는 건강에 신경을 쓰는 자신을 발견할때
나이 들어가는구나를 느끼게 된다.
너무 무덤덤 무감각으로 살고 있는건 아닌지 순간순간 뒤돌아보면 섬짓하게 느껴질때가 있다.
정호승님의〈첫눈 오는 날 만나자〉를 안도현님의〈첫눈 오는 날 만나자〉와
많이들 혼동하기도 한다.그래서 첫눈 오는 날 만나자를 검색해 보면
시와 시인이 맞지 않게 연결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안도현님의 첫눈 오는 날 만나자는 이렇게 시작된다.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어머니가 싸리 빗자루로 쓸어놓은 눈길을 걸어
누구의 발자국 하나 찍히지 않은 순백의 골목을 지나
..
많이들 들어 본 문구일 것이다.
같은 제목 비슷한 내용이 많은 것은 그만큼 첫눈에 대한 기대감과
설렘들이 있다는 증거이기도 할 것이다.조금 메마른 일상에 기다리던 누군가를 만날수 있고
무언가 좋은 일이 생길것만 같은 그런 희망 같은게 아니었을까.
막연한 공상이어도 좋다.
그런 상상이나 기대감마저도 사라져 버리는게 아닌지 나이는 먹되
감정마저 놓아버리지는 말자.
시 한편에 공감할수 없는 사람은 되지 말기를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어본다.
컴퓨터 배경화면을 바꿔 놓은지 오래되었는데 간만에 매일매일 설경들을 갈아보는 호사로움도 누려볼수 있겠다.
능경봉 지나면서부터는 마냥 이런 여유를 누리지는 못할 것이고
따뜻한 날씨에 눈도 금새 녹아날게 분명하니 이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이젠 조금 서둘러 능경봉으로 오른다.
헬기장을 지나니 능경봉 정상에 이른다.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눈사람이 기분좋게 맞아준다. 그려~웃어주니 얼마나 좋단가.
예전엔 정상석이 반대쪽으로 세워져 있어 좀 답답한 느낌이 있었는데
이젠 좀 트인 곳으로 향하니 보기에도 좋다.
능경봉(1123m)은 평창군 대관령면 횡계리와 강릉시 왕산면 왕산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대관령 남쪽 산맥 중 제일 높은 봉우리라 하여 능경봉이란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큰 배낭을 메고 내려가셨던 분들이 1박을 한 능경봉 정상은 비박지로 많이들 찾는 곳이기도 하다.
언젠가 내가 비박이란 표현을 쓰니 어느 분 야영이란 말이 맞는 것이라 하셨다.
맞다. 원래 비박이란 텐트나 장비없이 자연속에서 밤을 지새는 것을 말하지만
요즘은 야영이란 말 대신에 비박이란 표현을 많이들 쓰니 이 또한 흐름이 되었다. 진짜 비박은 거의 볼수가 없어졌다.
언어는 조금씩 변해가기도 한다. 원래는 잘못된 표현이었다가도 사람들이 많이 쓰면 하나의 단어로
재탄생하기도 하고 바른 말 표준어가 되기도 한다.
독일어와 프랑스어로는 비박이 야영을 뜻하기도 한단다.
차갑지만 영롱한 얼음구슬들이 얼음왕국의 배경이 된 듯 시원스럽기 짝이 없다.
제왕산에서 오봉산으로 이어지는 능선과 강릉시내와 그 앞바다는 하늘인지 바다인지 한몸이 되어
그저 이 천연색들의 조합이 한없이 아름다울 뿐이다.
매봉산과 칠성산 만덕봉으로 이어지는 능선도
이 눈꽃의 호위를 받으니 더할나위 없는 겨울산이 되었다.
솜사탕보다도 더 부드러운 눈꽃 아래서 인증 한장 남기고
이제 서둘러 고루포기산을 향해 간다. 전망대 방향으로 진행.
능경봉을 내려가는 길에도 파란하늘과 대비를 이룬 눈꽃이 절정을 이루었다.
작년엔 강원도 눈소식이 귀하기만 하더니, 올 겨울엔 이미 여러차례
미시령 한계령 대관령을 중심으로 눈꽃 뉴스가 전해지고 있었으니 당장 달려가지 못함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그때처럼 떠들썩하지 않았지만, 간밤에 조용히 내린 눈을 만나니 이 어찌 즐겁지 아니하겠는가.
그저 겨울 느낌 나는 눈길을 밟아보고 싶다 그 정도였지 아~이렇게나 황홀한 설경을 기대나 하였겠는가.
게다가 눈이 내리고 하루이틀 지나면 쉬 녹아내리기 일쑤이니
이런 산호수 같은 설화를 얼마만에 보는 것이던가.
행운처럼 날을 너무도 잘 맞춘 내 자신이 대견하기까지 했다~^.^
그러니 이런 하늘과 풍경을 두고 바쁘게 걸어가는 건 자연에 대한 유죄여라.
아름다운걸 아름답다 말하지 못하는 건 크나큰 형벌이여라.
능경봉을 내려오면 행운의 돌탑을 만난다.
우리 선조들은 험한 산길을 지날때마다 길에 흩어져 있는 돌들을 하나씩 주워
한 곳에 쌓아 여로의 안녕과 복을 빌었다 하여 여기를 지나는 등산객들의 안녕과 행운을 기원하기 위해
세우게 되었다 한다. 그 옛날 이 길을 지났다 생각해보라.
짐승 소리며 불확실한 등로에 모든게 두려움으로 다가왔을 시대에 살았을 사람들.
우리는 지금 얼마나 고마운 길을 걷고 있던가.
쑥버무리가 된 듯한 소나무 하나도 압권이고
블루스크린을 친 듯, 블루와 화이트의 대비가 흉내낼수 없는 거대 작품들을 만들어 내었다.
내가 담았지만 한장한장 다시 돌려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느낌이다.
베리베리 굿이여요.
그렇게 한바탕 치고 올라서니 전망대다.
내 선택장애를 시험하려는 듯 한장만 택할 수 없을만큼 모든게 엽서속의 그림이 되었다.
전망대에 올라서면 먼저 우측으로 지나온 능경봉이 보이고
가운데 쑥 들어간 대관령과 좌측으론 선자령 풍차들이 늘어섰다.
선자령과 우측 대관령, 좌측으론 소황병산과 황병산.
따뜻한 날씨에 벌써 눈도 많이 녹고 있었다. 이러니 내일 이곳을 찾는 님들은
오늘의 풍성했던 설경을 생각도 못할 것이다.
이 사진 한장에 눈이 내린 경계가 뚜렷해졌다.
가운데서 우측으로 동대산 두로봉은 그래도 눈이 조금 쌓였지만
가운데 오대산과 좌측으로 소계방산 계방산으로 갈수록 눈은 거의 내리지 않았다.
산중에도 저럴 정도니 아까 진부나 장평을 지나올때는 눈 하나 구경할수 없었던게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심지어 횡계에도 눈이 거의 없었으니 설경에 대한 기대는 거의 하지 못했던 것이다.
우측 높은 봉우리가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는 황병산이다.
심볼처럼 우측 황병산의 둥그런 볼이 보이고, 맨 우측으론 소황병산 목초지에 눈이 더 쌓인 모습도 보인다.
가운데 빼꼼 올라온 곳은 두로봉이고 그 좌측으로 동대산 그리고 오대산으로 이어진다.
아래엔 평창군 대관령면 횡계리의 풍경이다.
아직 고루포기산에 가지도 못했는데 이 전망대에 오기까지 무려 세시간이나 걸렸다.
초반, 설경에 취해 원없이 늑장을 부려 본 까닭이었다.
아무리 겨울이라 한들 하늘 좋고 눈꽃이 제대로인 날을 그리 쉬 대면할수 있을 것이며
게다가 내린 눈은 쉬 녹아내리기 일쑤이니 오늘같은 날이 그리 자주 찾아오겠는가.
어느 지역에 눈이 내렸다 하면 그저 떠나고 싶다는 마음만 간절할 뿐
사는게 어디 실행하기 그리 쉬운 일이었던가. 그러니 오늘을 대충 흘려보낼수 없는 이유인 것이다.
능경봉을 지나면서부터는 하루이틀 지난 발자국만 몇개 나 있을뿐
오늘 고루포기산으로 향한 발자국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 발자국이라도 닭목령으로 이어져 있길 바래보며 고루포기산으로 간다.
전망대에서 고루포기산까진 1km.
오목골 갈림길도 지나고 지르메 갈림길 임도를 만나면 고루포기산이 지척이다.
보통 고루포기산에서 하산을 할때엔 지르메보다 오목골로 하산하는게
거리도 짧고 수월해 더 많이들 이용하는 편이다.
지르메양떼목장이라고 예전엔 좀 유명했던거 같은데 대관령양떼목장 때문인지
요즘은 그 이름도 잊혀져가는 느낌이다.
오늘 이 곳에 온 사람이 없다는 걸 입증이라도 하려는 듯
정상석엔 눈이 쌓여 글씨가 보이지 않았으니 내가 쓸어내린 뒤 담은 모습이다.
고루포기산(1238m)은 평창군 도암면과 강릉시 왕산면에 걸쳐 있는 산으로
고루포기산이란 이름은 다복솔이라고 키가 작고 가지가 많은 소나무들이 배추처럼 포기를 지어 나서 붙여진 이름이다.
때마침 뒤쪽으론 안반데기의 고랭지배추밭이 있으니 그 이름이 절묘하게 맞아드는 곳이 되었다.
백두대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며 이름이 알려진 산이기도 하고
언젠가부터 선자령 건너편에 있는 제왕산, 능경봉과 더불어 겨울이면 설경산행지로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고루포기산에서 닭목령까지는 6.3km.
역시나 고루포기산을 내려오면서부터는 아무도 지나지 않았다.
오래 된 발자국 하나 보이지 않지만 그래도 이렇게 길이란게 드러나고
하늘마저 설경마저 이쁜 날이라면 아무래도 상관 없겠다. 그러나 걷기는 쉽지가 않다.
철탑을 내려갈때쯤 우측으로 안반데기 고랭지채소밭도 보이기 시작한다.
진행 방향 우측으로 계속 안반데기를 옆에 끼고 걸을 것이다.
뒤로는 다음 구간 화란봉과 석두봉으로 이어지는 대간길도 함께한다.
아~탁 트인 너른 길엔 길이라도 선명히 보이더니 숲 안쪽으로 들어서니
눈은 생각보다 깊었고 어디가 길인지 정확히 구별하기도 힘들어졌다.
푹푹 빠지는 발을 떼서 한걸음 다시 또 한걸음 내딛기가 너무 버겁다.
게다가 습한 눈이라 내가 밟은만큼 아이젠에 그대로 뭉쳐 달라붙으니
발은 무겁고 걷기는 힘들고. 이대로 계속 진행할수나 있을지 모르겠다.
한발자국 떼면서 한숨이 나오니 되돌아갈지를 고민해야 했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러셀하며 지나본 적 있는가.
뒤따르는 누군가들을 위해 선두에 선 길이라면 의무감과 책임감 뿌듯함으로 길을 내겠지만
아무도 뒤따르는 이 없으니 내 발자국은 오로지 내 고뇌를 품은듯 하였다.
그러나 내일이고 모레고 이 길을 걸을 누군가들에겐 또 다른 길이 되어줄 것이고
안내자 같은 지침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니 길을 만듦에 억울해하지 말라.
너무 힘겨워하지도 말라.
그렇게 왕산제1쉼터를 지나고 나니 이제 안반데기(피덕령)도 가까이 드러났다.
안반데기는 해발 1100m 능선에 펼쳐진 고랭지채소밭으로 원래 화전민이 일군 땅이었는데
지금은 별보기 명소이자 차박지로 유명한 곳이 되었다.
이따 하산해 강릉까지 태워준 청년은 어젯밤 별을 보기 위해 저 안반데기에서 1박을 하였는데
날이 흐린 탓인지 별이 잘 보이지 않았다 했다. 대관령도 가본적이 없다 하여
대관령과 선자령에 올라보아도 좋다 말해 주었다.
일대를 전혀 알지 못했던 그 청년이 무작정 별을 보기 위해 찾았다는 이야기에
문득 파울로 코엘료의〈연금술사〉가 떠올랐다. 그 청년의 분위기가 그리 느껴졌을 것이다.
마음은 고통을 받을까 두려워하지만 꿈을 품고 내면의 목소리를 들어보는거야.
이 세상에는 위대한 진실이 하나 있어. 무언가를 온 마음을 다해 원한다면 반드시 그렇게 된다는 거야.
무언가를 바라는 마음은 곧 우주의 마음으로부터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지.
그리고 그것을 실현하는게 이 땅에서 자네가 맡은 임무라네.
꿈을 이루지 못하게 만드는 것은 단 하나,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일세..
아프니까 청춘이라지만 조금은 덜 아프고 조금은 덜 고통스러웠으면 좋겠다.
너무 큰 시련은 좌절로 이어질수도 있으니 말이다.
나는 이 장면에 푹 빠져버렸다.
마치 유화물감과 수채물감이 섞인 듯 하늘과 산의 색감이 저리도 아름다울수가 없다.
닭목령에서 삽당령 가는 길에 있는 화란봉이다. 아래엔 파란지붕의 한우목장도 보인다.
우측으로 산길을 돌아 저기 한우목장 임도 끝에서 만나 조금 내려가다가 다시 산길로 접어들 것이다.
예전엔 이 농장 이름을 맹덕목장이라 하였는데 지금도 그러나 모르겠다.
예전에 저 길을 지날때 분홍바늘꽃을 원없이 본 기억이 있다.
화란봉 뒤로는 석두봉으로 이어질 것이다.
대관령쪽에 눈이 더 내린걸 감안하더라도 아침의 모습이었나 싶을만큼 눈은 빠르게 녹아내렸다.
하지만 숲 안쪽엔 눈이 많이 쌓여있으면서도 습하니 이런 날이 걷기엔 더 힘이 든다.
좌측 고루포기산에서 내려온 능선과 우측은 서득봉 능선. 그 너머로 선자령의 풍력발전단지도 들어온다.
파란하늘도 좋지만 은은한 저 하늘빛이 너무나 아름답다.
한우목장 임도를 만나 조금 내려가다 다시 산길로 들어서게 된다.
그렇게 15분쯤 걷다 보면 고랭지채소밭을 만난다.이젠 닭목령이 지척이란 뜻이기도 하다.
배추며 온갖 고랭지 채소들을 심어두던 그곳도 이젠 쉼에 들어갔다.
가운데서 우측으로 보이는 산은 사달산과 노추산이겠다.
나에게 사달산은 한겨울 위험했던 순간으로 기억되었다.
노추산은 그래도 사람들이 좀 거니니 길이 나 있지만, 눈 많은 겨울날 사달산은
제대로 하산한 사람이 몇 없을만큼 길을 찾기 힘들었다. 혼자가 아닌 안전할것 같은 단체 산악회로 갔지만
오히려 더 우왕좌왕 결국 제각각 한밤중이 되어서야 내려온 것으로 감사해야 할 날이었다.
겨울산은 특히나 조심하고 또 준비하고 자신의 체력에 맞는 산행을 해야겠다.
결국 자신과의 싸움일뿐 단체산행이라고 안심하지도 말아야겠다.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겠다.
3시쯤 닭목령으로 내려선다. 닭목령은 4~5년만에 다시 밟아보는것 같다.
길 건너편은 다음 구간 화란봉과 석두봉 삽당령으로 이어질 것이다.
강릉시 왕산면 왕산리와 대기리에 위치한 닭목령(700m)은 금계포란형으로
닭의 목에 해당되는 곳이라 하여 닭목, 고개 모양이 닭의 목처럼 길게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나 닭의 어원은 높다는 뜻의 우리말 달에서 비롯되었다고도 하니
높은 고개란 뜻이었는데 한자로 표기하면서 변형되었다고도 한다.
차량도 많이 다니지 않거니와 대중교통도 불편한 곳.
안반데기에서 별을 보겠다고 차박을 했다는 20대 청년이 강릉터미널까지 태워줘
3시 45분 차를 타고 어렵지 않게 서울로 돌아올수 있었다.
버스가 다니는 성산면까지만 태워줘도 된다 하였더니 차는 자기의 편의를 위해서도 사용하지만,
다른 사람의 발이 되어야 한다라고 스승에게 배웠다 했다.
참 멋진 말이었고 그 스승의 그 제자라고 잘 배운 아름다운 청년이란 생각이 들었다.
여러차례 이 구간을 지나봤지만 혼자서 닭목령까지 진행해 본 것은 처음이었다.
설경에 즐겁기도 했지만 닭목령으로 향할때 러셀 안된 많은 눈은 두려움이기도 했다.
잘 마칠 수 있었음에 감사하고, 건강한 몸으로 다시 또 나설 수 있길 바래본다.
**다음 블로그가 2022년 9월이면 영원히 종료된다는 통보에 수많은 자료들이 사라질까 두려워
급하게 낯선 티스토리로 옮기니 많은 분들의 댓글과 공감도 모두 날아가 버렸다.
우연이라도 이 덧붙임을 보실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동안 다음 블로그에서 응원주시고 함께해주셨던 님들께 감사하고 죄송한 마음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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