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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남원 고남산(백두대간 여원재~사치재) 대중교통.

2024년 신간 《그 산에 그 꽃이 핀다》가 출시되었다.

 

‘산’이라는 캔버스 속 

‘꽃’이라는 팔레트

아름다운 천연의 빛깔을 만나 보자.

 

 

 

필자의 산행과 여행에는 늘 들풀꽃나무와 함께했지만

이번 《그 산에 그 꽃이 핀다》에서는 특히나 그 산에서 피어나는 야생화에 초점을 맞췄다.

 

몇 년 뒤면 공항이 생겨 접근성이 좋아질 울릉도는 특산식물과 희귀식물의 집합체로

그 모든 것이 고유종과 희귀함으로 연결된다.

이른 봄의 기운을 느낄 수 있는 가덕도와 비금도는 바다를 낀 그림 같은 풍경에 압도당하게 된다.

가덕도 역시 신공항이 생길 지역이라 달라질 모습에 대한 기대와 우려도 함께 뒤따르게 된다.

야생화로 유명한 석병산과 보현산, 덕유산과 소백산, 화악산 등 그 산지마다의 시그니처 같은

야생화 이야기 그리고 미스터리한 숲, 높은 산지에서나 볼 수 있는 귀한 식생이 즐비한

평창 대덕사 계곡도 담겼다.

 

- ‘책을 내면서’ 중

 

 

 

 

어느 곳 하나 소중하지 않고 야생화 만발하지 않은 곳이 없지만

그래도 가장 많은 비중을 두어 엮은 것은 울릉도다.

성인봉과 나리분지, 그리고 독도와 관음도 일대를 4월과 6월 두 차례 다녀오며 

육지에서는 접하지 못하는 울릉도만의 특수한 매력을 가득 담을 수 있었다.

 

 

 

 

울릉도 하면 떠오르는 호박엿이 원래는 호박엿이 아닌 이 나무 이름이 잘못 알려진 유래와

보지 못할 뻔했던 헐떡이풀을 어렵게 만난 사연도 전한다.

 

멸종위기종 만큼이나 만나기가 어려워진 우산제비꽃과

울릉도 주민에게 한시적으로 채취가 허용된 울릉산마늘에 대한 이야기

나리분지와 섬말나리 이름이 생기게 된 이야기 등도 실렸다.

울릉도만으로 책 한권을 따로 만들어야 할만큼 이야기가 풍성하다.

 

 

 

 

희귀식물의 보고, 석병산은 한 계절만으로 표현하기 안타까운 마음이 있어

4월의 석병산 그리고 꽃쟁이들이 가장 많이들 찾는  여름 야생화 편으로 나눠 구성했다.

특히나 여름철 석병산은 말 그대로 희귀식물의 교본이고 집합소를 이룬다.

 

책을 내고나면 늘 아쉬움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2024년 신간《그산에 그꽃이 핀다》는 그런 아쉬움을 채우려 최대한 불필요한 요소들은 줄이고,

나날이 달라지는 식물체계에 대해 게을리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무엇보다 야생화 이야기에 집중하려 했다.

산과 여행, 야생화에 관심 있는 분들께 추천합니다. (2024년 2월 덧붙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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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명산, 절경따라 걷는 길

2023년 1월, '효빈 길을 나서다'의 네번째 책 《오늘의 명산, 절경따라 걷는 길》이 출간되었습니다. 산에도 유명세를 타고 유행을 쫒는 산지들이 있기 마련이다. 요즘은 사진 스팟이나 핫 플레이

0709im.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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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코스 : 여원재~고남산~매요마을~유치삼거리~사치재(약 13km로 4시간 20분쯤)

서울강남고속터미널(센트럴시티)에서 6시 첫차를 타고 남원으로 간다.

남원고속터미널에서 150~200m 정도 걸어가면 있는 도통동주민센터 앞에서

9시 48분쯤 142번 버스를 타고 여원재로 간다.

 

 

 

10시 15분쯤 도착한 여원재. 버스정류장 이름은 장동이다.

새벽에 무박을 시작한 한 대간팀은 이미 산행을 마치고 선두팀이 여원재로 내려오고 있었다.

복성이재부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여원재에서 고남산까지는 5.4km, 사치재까지는 13km쯤 될 것이다.

복성이재까지는 20km에 육박하지만 워낙 육산이라 거리에 비해 시간은 많이 걸리지 않는 구간이다.

 

 

 

고남산 방향으로 오르면서 뒤돌아 본 여원재.

아까 차에서 내린 쪽, 그러니까 길 건너편은 수정봉과 정령치 방향으로 이어지게 된다.

바래봉과 지리산 서북능선이 저리도 아무렇지 않게 펼쳐지고 있으니

이곳이 지리산권이란 실감을 하며 첫발을 내딛어 본다.

멀지 않은 여원치 마애불상(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62호)도 들러보면 좋겠다.

 

 

 

그렇게 대간길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무덤 하나가 보이고

우측으로 가야 할 고남산이 보인다. 바로 고남산을 향해 오르면 가까울듯도 보이나

대간길은 좌측으로 돌아가게 되어 있다.

오늘 구간은 단순히 산만이 아닌, 산과 들과 마을과 도로를 만나는 다양한 길을 걷게 된다.

무덤도 많이 만날 것이다.

좌측으로 빙 둘러 가다가 저기 장동마을에서 본격적으로 산길로 진입할 것이다.

 

 

 

장동마을에 이르러 붉은 담벼락 페인트길을 지나 본격적으로 산길로 진입한다.

오랜만에 와봤는데도 짧게 짧게 어렴풋 기억들이 난다.

 

 

 

이미 숲은 초겨울 느낌이 가득하다. 가는 길 안내문 하나가 설치되어 있다.

동학농민혁명때 전라좌도를 관장하던 김개남 장군이 농민군의 정예부대를 이끌고 북상한 뒤

다른 지역의 농민군이 영남지역 진출을 위한 교두보를 마련하기 위해

이 고개를 통해 운봉현을 공격하였다 한다.많은 사상자와 함께 역사적 장소가 된 방아치다.

그 혁명의 기운들이 서린 방아치를 지나면 고남산이 가까워진다.

워낙 곳곳에 이정표가 잘 되어 있으니 백두대간을 걷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반증으로 보아도 될 듯 하다.

 

어느 뙤약볕이 강하던 날,이 무덤을 지나며 힘들어했던 기억도 난다.

고남산까지 가는 길은 전형적인 육산으로 동네 뒷산을 산책삼아 걷는 기분이다.

간간이 등로 주변으로 바위지대도 보였다.

 

 

 

어느 정도 올랐을때 나무가지들 사이로 남원 시가지가 보이기 시작한다.

중절모 같기도 하고 어린왕자에서 말하는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 같기도 한 가운데 남원 교룡산도 보인다.

교룡산 좌측으론 문덕봉 고리봉도 지난번 다녀오고 나니 그 형체 정확히 알아볼 수 있겠다.

문덕봉은 약간 쌍봉 같은 형태를 띠고 있다.

그리고 교룡산 우측 뒤론 희미하게나마 회문산도 잡히기 시작한다.

 

 

 

바위가 보이고 계단이 시작되니 정상이 가까워졌다 싶다.

 

 

 

그렇게 계단을 올라서 보니 조망이 아주 좋다.

가운데 뾰족 남원 만행산(천황산)이 드러나기 시작했고

 

 

 

좌측 여원재에서부터 지나온 능선길과

반대로 거슬러 여원재 너머로는 수정봉과 고기리 정령치로 백두대간이 남으로 향하게 된다.

앞쪽에 가운데서 살짝 좌측으로 두 봉우리처럼 볼록 올라온 곳이 동학농민혁명때 격전지였던 방아산성(합민성)이다.

 

 

 

여원재 뒤로 첫번째 봉우리가 주지봉이다.그 뒤로 갓바래봉,다음 너울이 수정봉,덕운봉

맨 마지막 줄,좌측으로 가장 높은 봉우리가 만복대다.만복대 정령치 큰고리봉으로 서북능선이 이어지는 것이다.

 

 

 

너울이 이리도 아름다울 수 있는가. 정상에 올라서 봐도 될텐데 혹여라도 이 순간이 사라져 버릴까

계단 끝에서 더 이상 이동하지 못한채 수없이 셔터를 눌러야 했다.

가운데 여원재와 뒤로 수정봉 정령치 만복대로 이어지는 서북능선 길이다.

맨 좌측 뒤로 완만하게 솟아 오른 반야봉도 보인다.

 

 

 

지난번 문덕봉 고리봉에서도 제대로 보지 못했던 무등산을 훨씬 더 떨어진 이곳에서 만나는 기쁨도 상당히 크다.

가운데 뒤로 봉긋 솟아 있는 무등산이 보이는가. 하늘에 뜬 신선의 집처럼 그저 신비롭게 보일 뿐이다.

그 우측으로 뽀족봉이 고리봉, 맨 우측이 문덕봉이다.

크게 기대없이 찾은 날,의외의 조망에 정상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멈춰버렸다.

 

 

 

우측으로 무등산이,그리고 좌측 뒤로 멀리 봉우리 하나가 보이지 않는가.

와우~모후산으로 보인다.

모후산도 조망이 어찌나 좋던지 일망무제란 표현이 아깝지 않은 산지였다.

정말 믿기지 않을만큼 겹겹의 너울이 아름다운 날이다.

 

 

 

좌측 교룡산 뒤로는 순창의 강천산 회문산 백련산이 포진해 있을 것이고

오늘 같은 시야라면 전주 모악산도 어렵지 않게 잡히겠다.

 

 

 

 

와불바위라 하기도 하고 의자바위 상투바위라 불리기도 하는

바위를 옆에 끼고 산불초소가 있는 고남산 정상으로 오른다.

뒤로는 팔공산부터 장안산 백운산 대봉산으로 장수와 함양의 산지가 펼쳐진다.

 

 

 

이곳에서 무려 30년을 근무했다는 산불감시초소 지킴이님께서

여기저기 보이는 조망에 대해 일러 주신다.

머리 쓰지 않고도 사방팔방 둘러볼수 있으니 한결 바라보는 맛이 좋다.

혹여 지킴이님이 착각한 곳도 있을수 있으니 집에 돌아와 지도 펴놓고 짚어보니

역시 30년 내공은 어딜 가지 않았다.

 

잠시 뒤부터 어디 근처에 불이 났다고 무전이 오기 시작했다.

여기서 무전을 받고 또 다른 곳으로 연락을 해주는 모양이었다.

도대체 왜 불이 나는지 자연발화라면 어쩔수 없는 일이지만 부디 산불조심요~

 

 

 

남원시가지와 좌측 뒤 무등산에서부터 고리봉과 문덕봉,그리고

우측 뒤 회문산으로 이어지는 호남의 명산들이 시원스럽게 펼쳐진다.

가운데 문덕봉 뒤로는 병풍산,추월산,강천산 등도 아련한 너울들로 합류한다.

 

 

 

봐도봐도 물리지 않는 좌 모후산과 우 무등산도 마저 한장 더 담아본다.

앞에 튀어나온 봉우리가 동학혁명때 격전지였던 합미성(방아산성)이다.

 

 

 

운봉분지와 뒤로는 가운데 짝궁딩이라는 별명을 가진 반야봉을 중심으로

우 큰고리봉과 정령치 만복대로, 좌 세걸산과 바래봉으로 서북능선이 펼쳐진다.

우측 만복대 아래의 나즈막한 봉우리들은 여원재에서 시작하는 주지봉과 수정봉 덕운봉 능선들.

우측 뒤에서 두번째 줄,완만하게 두개의 봉우리로 된 곳이 수정봉 덕운봉이다.

 

 

 

좌 덕두산 바래봉부터 우측 끝 만복대까지.

좌측 덕두산과 바래봉 뒤로 지리산 정상인 천왕봉이 보이고 그 우측으로

지리산의 수많은 봉우리를 거닐고 오다 우뚝 반야봉을 솟아 오르게 했다.

이 한장의 사진으로 지리산을 모두 대면하고 있으니 이 어찌 황홀한 순간이 아니겠는가.

 

지리산임에도 산이 높아 보이지 않는 이유는 평균 4~500m 된다는 운봉읍의 고지대 평야 때문일 것이다.

이따 사치재로 하산했을때 운봉읍까지 태워주신 주민분께서

운봉의 농산물이 맛있고 양이 부족할만큼 잘 나간다는 말씀이 이 분지에 담긴듯 보였다.

자기가 사는 지역과 내 농산물에 대한 자부심을 엿볼수 있어 괜히 나까지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반대편 북쪽 조망도 살펴보자.

좌측 남원의 만행산과 가운데 뒤로 보이는 산은 장수 팔공산이다.

팔공산과 천상데미로 이어지는 길은 끝판왕이라 해도 좋을만큼 조망이 좋은 산지다.

올 겨울엔 꼭 잊고 있던 팔공산도 데미샘도 다녀와야겠다.

팔봉산 우측으로는 장수 장안산으로 이어질 것이다.

 

 

 

길 건너 좌측 앞의 산을 대성산이라 하는데 다음 지도에는 나와 있지 않다.

가운데 장수 장안산과 그 바로 우측으로 백두대간인 백운산도 보이고

우측 뒤로 남덕유의 모습도 선명하게 잡힌다.

맨 우측 쌍봉으로 있는 대봉산(계관산)도 어렵지 않게 짚어볼 수 있겠다.

 

 

 

산불감시요원께서 한장 담아주신다.

돌려서 늘리고 줄여야 하는 스틱은 망가지기 일쑤라 낭패를 볼때가 자주 생긴다.

새로 구입을 해야 하는데 귀찮아 그냥 오는 바람에 나뭇가지 하나를 주워 들었으니 어뗘유,

도사님처럼 보이나요~아님 (나는 자연인이다)는 어떤가요~^^

 

예전엔 이곳에도 길다란 정상 표식이 하나 있었는데 산불초소 등으로 비좁으니 정상석은 아래쪽에

두었고 이곳엔 고남산제단지라는 안내문이 하나 세워져 있다.

고려 우왕 6년(1380년)에 왜구가 인월역에 진을 치고 약탈을 일삼자

왜구를 토벌하기 위해 고려군을 지휘하고 운봉에 도착한 이성계 장군이 이 곳 고남산에 올라

석축으로 제단을 쌓고 필승을 다짐하는 산신제를 올렸다고 한다.

 

 

 

이성계 이야기는 들머리였던 저기 가운데 여원재에서부터 시작된다.

남원이나 운봉 함양을 오갈때면 꼭 거쳐가야 했던 고개 여원재.

고려 말 왜구의 침입으로 운봉현까지 왜구의 약탈이 잦았고

고갯마루에서 주막집을 하던 주모에게까지 그 수모가 이어졌으니

주모는 왜구의 손을 탄 왼쪽 가슴을 잘라내고 자결하였다 한다.

 

이성계가 황산전투에 나서기 전 꿈속에 어느 노파가 나타나 고남산 산신단에 3일간 기도하고

출전하라는 말대로 한 뒤 대승을 거두게 되었다 한다.

이 노파가 왜구의 괴롭힘으로 자결한 주모라 생각하고

그 주모를 위로하기 위해 서당을 짓고 여원이라 하였으고 그 이후 여원재라 불리웠다 한다.

이 일대엔 이성계와 그 여원에 관련해 지은 마을 이름들도 많다.

 

 

 

그런 역사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 산이고 지명이니 다시 한번 둘러보게 된다.

정상 아래쪽엔 송신탑도 보인다. 무선중계소 옆 헬기장으로 바로 내려가기도 하는데

임도로 내려가는 우회길이 만들어져 있었다.

가운데 함양 삼봉산도 보이고 그 앞쪽으로 나즈막한 산 하나가 이성계가 왜구를 물리친 황산대첩이 있었황산이다.

이따 유치재에 가면 더 자세히 보여질 것이다.

 

 

 

조망에 취해 정상에 더 머물고 싶었지만 무전이 계속 오가니

괜히 번잡할 것 같아 정상석 있는 곳으로 내려간다. 얼마나 산불이 자주 나는지

그럴 확률들이 많았던지 곳곳에 새겨진 불조심 문구를 봐도 알만한 대목이다.

 

 

참 오랜만에 대면하는 남원시 운봉읍과 산동면을 경계에 둔 고남산 정상(846m)이다.

뒤편에는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백두대간 지도와 현재 고남산 위치가 표시되어 있다.

지리산권을 지나면 백두대간은 덕유산권으로 진입할 것이다.

한 여름,주변으로 가득했던 야생화만이 막연히 떠오르는 고남산으로 남았다.

 

 

 

잡목들에 가려 제단지만큼 조망은 탁 트이지 않는다.

내 머리위로 지리산 서북능선 덕두산과 바래봉으로 한장 담아본 뒤 고남산을 내려간다.

 

 

 

백두대간 안내도가 있는 임도로 내려가니 오토바이와 트럭 한대가 세워져 있다.

잠시 사진 찍고 두리번거리고 있으니 정상에서 그 지킴이님 보고 있었던지

도로따라 올라가라 하신다. 내가 길을 몰라 서 있는줄 아셨나 보다. 넵~알겠습니다.

고남산 송신탑으로 이어지는 임도다.

 

 

 

송신탑 아래 임도에서 숲으로 다시 임도로

통안재를 만나기 전까지 서너번 임도와 산길을 오간것 같다.

곳곳에 워낙 이정표가 자주 붙어 있어 어느 명산들보다 길 찾기가 수월한 편이다.

 

그렇게 통안재를 지나 나즈막한 산길을 따라 매요마을로 가는 길.

힘들이지 않고 거닐수 있는 길이라 여유가 있다.

단체산행을 할때는 어쩔수 없이라도 앞사람, 뒷사람,주어진 시간 등을 고려해

걸음이 빨라질수밖에 없지만 혼자 걷는 길엔 그런 제약이 없어 좋다.

사치재에서 복성이재까지는 2~3시간 정도만 추가하면 되겠지만

5시 이후면 어둑해지는데다 교통도 좋지 못하니 사치재까지만 느긋하게 걸어 볼 생각이다.

 

 

 

 

삿갓을 쓴 듯, 붉게 익은 회잎나무 열매가 아름답기 이를데 없다.

봄이면 다른 나무들보다 이르게 잎을 피우던 회잎나무는

홑잎나물이라 하여 나물로 먹기도 하여 이른 봄이면 잎을 따는 사람들도 종종 만날수가 있다.

가지에 날개가 없는 것을 회잎나무, 가지에 날개가 있는 것을 화살나무로 구별한다.

물론 회잎나무와 화살나무를 같은 종으로 봐야 하지 않느냐는 견해들도 있다.

 

 

 

 

개쑥부쟁이와 노루발풀.

 

 

 

간간이 건너편으로 큰고리봉과 정령치 만복대로 서북능선 줄기가 보이고(왼쪽 나뭇가지 뒤)

 

 

 

 

반가운 매요마을에 이른다.

뒤로 꼭지처럼 봉긋 올라온 봉우리는 이성계의 황산대첩이 있던 황산이다.

 

 

 

5년만에 찾은 매요마을은 마을회관도 경로당도 깨끗하게 새단장이 되어 있었다.

유모차 끌고 지나시는 어르신께 안녕하세요~인사를 하니

지팽이가 멋지네 하신다~^^

 

 

 

이 파란색 지붕을 돌면 대간꾼들에게 유명한 매요휴게소가 있고

담벼락엔 이정표가 세워져 있는데 많이 지워져 거리는 잘 보이지 않았다.

이곳에서 고남산은 4.5km, 사치재까지는 3.1km 남았다.

 

 

 

이 구간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가 이 매요리와 휴게소였던것 같다.

막걸리 한잔과 간단한 요기를 하며 쉬어가는 매요휴게소도 오늘은 조용하기만 하다.

하기야 새벽에 시작해 이 길을 지났을 단체 한 팀이 전부였으니 말이다.

혼자 걷는 대간꾼도 한명 만나기는 했다.

 

 

 

이미 겨울이라 해야겠지만 

매요교회와 그 앞에 선 나무 한그루가 늦가을의 정취를 그대로 품고 있다.

어느 영화속의 한 장면처럼 고즈넉하게 느껴졌다.

 

 

 

이젠 단풍 하나 보기 힘들어진 계절,

그래도 남아 있는 붉음에 가는 길 멈추게 된다.

도로 따라 가다가 잠시 산길로, 그러다 다시 유치삼거리가 있는 도로로 내려설 것이다.

 

 

 

쥐의 배설물을 본 적이 있는가.아마도 이런 모습일 것이다.

크기도 모양도 이 열매를 닮아 이름 붙여진 쥐똥나무다.

 

 

 

이 계절에 만나는 까마귀밥나무는 더욱이나 반갑다.

 

 

 

 

유치삼거리로 가는 길, 역시나 지리 서북능선이 함께왔고

 

 

 

유치삼거리와 뒤로 볼록 올라온 산이 황산이다.

1380년 이성계가 왜구를 물리친 황산전투가 벌어진 곳으로

운봉읍 화수리에 황산대첩비가 세워져 있다.

 

도로로 내려갔다가 좌측 산길로 오를 것이다.

축사인지 농장인지 풀어 둔 개 한마리가 끝까지 뒤따라오며 위협하며 짖어댄다.

주인은 그만 하라 하지만 그 개에겐 주인의 다정한 만류가 칭찬으로 들렸을 것이다~^^

 

 

 

이 길을 지날때 저 장수 이정표를 보고 반가워 인증샷을 날린 기억도 있다. 다시 봐도 반갑다.

유치는 방아치처럼 동학농민혁명의 흔적이 남은 유적지다.

유치삼거리를 지나 사치재를 향해 다시 산길로 진입한다.

 

 

 

좌측으론 지나온 고남산도 보이고 그 아래 매요마을과

가운데 만행산과 우측으로 장수 대성산.

 

 

 

그렇게 유치재에서 한 봉우리로 올라서니 지난주 작은그럭재봉처럼

시리봉이라는 그 분의 코팅지가 걸려 있고 

그 아래쪽엔 한 산악회에서 걸어두었다 떨어진듯한 성봉이란 시그널도 보였다.

지난해 다녀온 분의 이야기를 들으니 그때는 저 성봉이 소나무에 붙어 있었다 한다.

어느것이 맞는 것인지도 모르겠고 봉우리 이름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지 진심으로 궁금해졌다.

복성이재로 가다보면 지도에도 나오는 시리봉이 있으니 좀 혼란스러운 부분이기도 하다.

 

 

 

그 봉우리에서 돌무더기를 내려와 15분쯤 진행하니 사치재다.

사치마을로 내려가는 임도와 복성이재로 향하는 산길이 보인다.

사치재 아래쪽을 바라보니 광주대구간 고속도로가 지나고 소나무 뒤로 흰 조형물이 세워진 지리산휴게소도 보인다.

 

 

 

사치재에서 사치마을로 내려가는 길,

차를 세워두고 무를 뽑고 계시는 주민분께 마을정류장까진 얼마나 가야 하는지 여쭈니

버스가 많이 다니지 않는 곳이기도 하고 때마침 운봉으로 나가신다고 태워주신다.

친정이 그곳이라 김장 도와주러 왔다가 돌아가려던 참이었다 한다.

 

덕분에 운봉에 도착하니 바로 남원으로 나가는 버스가 있어 어렵지 않게 돌아갈수 있었다.

사치마을에서 인월이 가까우니 택시를 이용해도 되고 인월에서 동서울 가는 버스를 타도 된다.

세번이나 밟아보는 구간이었지만 단체가 아닌 혼자 걷는 길은 처음이라

모든게 새롭고 내가 주도해 걷는 길의 설렘도 느낄 수 있었다. 그 설렘으로 간간이 대간길을 이어보려 한다.

 

**다음 블로그가 2022년 9월이면 영원히 종료된다는 통보에 수많은 자료들이 사라질까 두려워 

급하게 낯선 티스토리로 옮기니 많은 분들의 댓글과 공감도 모두 날아가 버렸다.

우연이라도 이 덧붙임을 보실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동안 다음 블로그에서 응원주시고 함께해주셨던 님들께 감사하고 죄송한 마음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