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0월 11일 일요일.
가을에 설악을 아니 다녀오면 섭하다.
하지만 올해는 건너뛰려 했다.
당일로 다녀오긴 아쉽고, 산악회 따라가긴 싫고
대피소 예약은 단풍철이 끝날때까지 만석..
아침 8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국공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딱 한 자리가 났다. 누군가 취소를 했을 것이다.
그런데 당장 오늘이다.
오늘 나서지 않으면
요즘 꿀꿀한 기분이 한동안 더 이어질것만 같다.
중청대피소 예약을 하고 무작정 한계령 가는 버스를 탄다.
12시가 다 되어서야 한계령에 도착한다.
한계령에 도착하니 밀려드는 차량에 경찰들만 죽을 맛이다.
날은 춥고 바람 불고
이 단풍철이 끝날때까지 경찰들 또한 인파와 차량과 전쟁을 치룰 것이다.
한계령 휴게소.
이곳은 산행을 하지 않는 사람들도
설악을 감상할수 있는 최고의 전망대다.
차를 타고 지나다 우연히 한계령을 넘는 사람들도
이 아름다운 풍경 앞에 멈추지 않을수 없을 것이다.
나 역시 산에 다니기 전,
이곳을 우연히 넘다 멈춰선적 있었다.
이곳이 한계령이었구나 했었다.
그때는 미시령과 한계령을 구분하지도 못했을 때였다.
~참고로 이 사진은 2000년이 얼마 남지 않은 겨울,
한계령 휴게소에서 찍었다 생각했는데 지금보니 많이 달라 보인다.
내가 한계령이었다 잘못 기억하고 있는지
변하기 전의 한계령인지 궁금해서 올려본다..
아시는 분,아니 계실까요~~
저 사람들은 왜 눈 쌓인 산을 가고 있는지~
산행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었을 때였다.
탐방센타 입구를 지나는데 대부분 하산하는 사람들이다.
이곳을 지날때는 늘 아침 9시 전후였던지라
한번도 생각해 본적이 없었는데 입산시간이 12시까지란다.
딱 12시.
중청까지 간다 하니까 예약을 했는지 확인하고서야 통과시켜 준다.
단풍으로 물들면 더 아름다운 흘림골.
아직 흘림골 단풍은 절정에 이르지 못했다.
일주일 뒤쯤이면 흘림골의 단풍에 눈도 마음도 홀리지 않을까~
붉게 물들어 가는 흘림골 단풍과
구불구불 한계령이 참으로 정겹게 느껴진다.
양희은의 한계령이라는 노래에 막연히 한계령에 오고 싶었던 적도 있었다.
가사는 가사대로,멜로디는 멜로디대로
마음을 쓸어내리기 딱 좋았던 노래~한계령..
~~저 산은 내게 우지마라 우지마라 하고
발 아래 젖은 계곡 첩첩산중
저 산은 내게 잊으라 잊어버리라 하고
내 가슴을 쓸어내리네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 처럼 살다 가고파
이산 저산 눈물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저 산은 내게 내려가라 내려가라 하네
지친 내 어깨를 떠미네
아 그러나 한 줄기 바람처럼 살다 가고파
이산 저산 눈물 구름 몰고 다니는 떠도는 바람처럼
저 산은 내게 내려가라 내려가라 하네
지친 내 어께를 떠미네 ~~♪♬
바람이 심하니 사진이 하나같이 흔들렸다.
비나 눈이 내린다 했는데 아직이고
대청봉 기준으로 풍속이 22~23km에 이른다 했다.
전망이 없을거란걸 알면서도 갑자기 나선 것은
가을 설악도 못본것을 뒤늦게 또 후회하고
나를 책할 것이 두려워서 였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내일은 날이 맑게 개인다 하니
공룡능선을 타든, 화채능선을 타든 하려 한다.
한계령 삼거리로 오르는 길엔 단풍이 곱게 물들었다.
앞으로 일주일까지가 절정을 이룰것 같다.
바람~~
오늘은 바람과의 싸움이 될것이다.
그래도 오늘 대청봉을 오르지 않는다면야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다.
날은 점점 흐려지지만
중간중간 트이는 가을 풍경들이 있어 마음은 흡족..
안개 낀 날의 비경.
모든게 다 보이지 않아도 된다.
가끔은 전부를 보고 싶지 않을때도 있다.
빛이 내려 오는 것~~?
아님,아주 작은 용오름이라도~~
아님,우주선이라도..
나처럼 때를 놓치고 후회할까봐 비바람을 각오하고 내려오셨나~
이 흐린 날에도 이리 아름다운데
맑은 날의 설악 단풍이야 말해 무엇하랴~
귀때기청봉 갈림길에 서니 조망이 트인다.
좌측의 귀때기청봉 능선이 흘러내려
건너편의 용아능선과 맞닿는다.
아름다운 설악의 용아릉과 공룡능선이 한눈에 그려지는 곳.
왼쪽 뒤로 황철봉 능선도 보인다.
어느 분,
사진을 부탁하시면서 나에게도 찍어 주신다.
만나면 하는 인사가 안녕하세요.반갑습니다면 족할텐데
묻는 말은 혼자 오셨어요~다.
네.혼자 왔어요..했더니 왜 혼자 왔느냐 묻는다.
같이 동행하면서 더 친해진다면야 몰라도
만나자마자 사적인 질문들은 좀 불편할때가 있다.
다시 중청으로 가면서 전망이 트인다.
한계령 너머의 풍경들은 이제 보이지 않는다.
이런날은 이런날대로의 운치가 있으니
먼곳을 바라보지 않아도 괜찮다.
충분히 아름답다.
한계령에서 중청으로 가는 길은 바위 너덜이 이어져
그리 쉬운 코스는 아니다.
내가 처음 이 길을 걸었을때는 눈이 많이 쌓여
이런 바위가 있는걸 구분하지 못했을 때였다.
그래서 난 오히려 평지 같았던 눈길이 편하다 생각했을 것이다.
안개와 고사목과 가을~~
멋진 풍경이다.
날이 더 흐려지더니 보슬비와 더불어 진눈깨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시야도 점점 흐려지고 보이는건 바로 앞 뿐이다.
끝청봉에 도착했지만
건너편의 가리봉도 주걱봉도 귀때기청봉도 흔적도 없이 뭍혀 버렸다.
이제 중청대피소는 바로다.
춥다.바람도 심해진다.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는다. 눈발이 오락가락 흩날린다.
더듬더듬 내려서니 중청대피소다.
아니, 사람들 소리가 나서 중청대피소란걸 알았다.
이 사진은 허공에 찍은 것이다.
이 대피소마저 분간이 되질 않았다.
바람은 더 심해졌다.
이제야 오후 3시. 한계령에서 3시간 걸렸다.
~~~
대피소에 들어가보니 사람들이 복도에 서 있다.
5시 자리 배정때까지는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한다.
예전에는 쉴수 있게끔 개방을 해두었는데 참 난감하다.
할일이 없으니 대청봉으로 올라 보기로 한다.
그런데 웬걸 바람이 너무 심해 날아갈것만 같다.
5분도 안되어 되돌아 내려온다.
그러나 대피소에서 할일이 없다.무작정 시간을 때우는 것 밖에는..
다시 심기일전하고 옷을 단디 여미고 재도전을 한다.
나에겐 최근 찌워둔 살이 있지~^^ 내 두둑한 뱃살을 믿어보기로 한다.
올해의 첫 상고대다.
가을을 보러 왔더니 겨울을 만나고 있다.
어제 이미 첫눈이라 하긴 뭐하지만, 진눈깨비가 조금 내렸다 한다.
그래도 나에게는 오늘이 첫눈이고 첫 상고대다.
칼바람에 몸이 휘청거린다.
한발 한발 디디기가 힘들다.
내 원하는대로 걸음을 옮길수도 없다.
날려보내 보라지~
이 김에 공중부양 한번 해봐도 나쁘지 않지~뭐~
가을에 만나는 첫 상고대를 만끽하고 싶다만
손이 어찌나 시려운지 이제 감각이 없어져 버렸다.
제법 두터운 장갑을 준비했는데도 소용이 없다.
풍속 20km가 넘는 바람의 위력을 당해낼 재간이 없다.
이 대청봉을 넘지 않고 오색으로 가는 길은 없을까를 생각할만큼
어디로라도 내려서고 싶었다.
이 삐툴어진 대청봉 정상 사진이 최선이었다.
이 한장을 찍다 나는 날라가는줄 알았다.
얼른 조금 아래로 숨자~~
이 와중에 인증샷을 남기는 님들은 참 대단해요~
다시 중청대피소로 내려가야 하지만 그러기가 싫다.
아직 3시 반도 안된 시간, 밤이 너무도 길것만 같다.
분명 내일이면 후회하겠지만
어쩌면 하산하기도 전에 후회하겠지만
그냥 집으로 가고 싶다.
오색으로 하산하기로 한다.
오색까지는 5km
오색으로 내려서면서 보이는 이 출입금지 안내문.
이 곳이 화채봉으로 가는 길이다.
이제 공공연하게들 드나들어 그런지 길이 맨질맨질해졌다.
용기내어 이 길을 도전해볼까 했는데 또 무산되었다.
붉은 단풍 대신,눈꽃과 상고대를 보고 있다.
어딜 가서 이 시기에 너를 볼수 있겠니~
행운이라 생각하련다~
정상 부위로는 큰 나무가 없는지라
그나마 키 작은 아이들이 있어 상고대를 만든다.
마치 쑥버무리를 해놓은듯 하다.
얘네들도 바람에 정신이 없다.
조금 내려서니 바람도 좀 잦아 들었고
상고대 대신,단풍이 반겨준다.
가을과 겨울을 동시에 만나고 있었다.
안개 낀 단풍숲..아름답지 않은가~
오색으로 내려서는 가을 길,
감상하면서 걸어보자.
이럴때는 조용한 발라드 하나 들렸음 좋겠다.
누군가 달달한 목소리로 불러줌 더 좋겠고..
오색으로 내려서는 길은 전망보단 단풍이 참 곱다.
이따가 급경사 내리막길에 들면
무릎 나가는 소리가 들려 걱정이긴 하다만~
두번 다신 오색으로 하산하지 않겠다
늘 다짐을 했었다.
그러면서도 1년이면 한두번은 꼭 오색으로 하산할 일이 생긴다.
끝없는 계단 내리막길에 에구에구~무릎 아퍼요~소리가 사방에서 들린다.
그런데 오늘은 괜찮다.
비까지 내려 미끄러운 길임에도 오히려 가뿐하게 느껴지는 날이다.
작년 H언니와 이 길에서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난다.
독주골에 다녀오면서다.
어두워질 무렵 딱 이 길을 지날때였다.
잘 지내시리라 생각한다.
건너편 점봉산 방향으로 전망이 트인다.
날이 개었다.
내일은 날이 좋다 하더니
나는 벌써부터 하산한 것을 후회하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다..잘했다.
오색 입구,
남설악탐방지원센타에 내려서니 오후 5시 10분..
한계령에서 12시 5분전에 시작했으니 5시간 15분 걸렸다.
사진놀음을 하지 않으니 딱히 지체할 일이 생기지 않았음이다.
동서울행 4시 50분 차는 떠났고
다음 막차는 6시 20분..
원통으로 나가 동서울 버스를 탈까 하다 그냥 막차를 타기로 한다.
온김에 오색약수와 주전골 단풍이 어느정도 들었나 들러 보기로 한다.
20대 초반, 오색약수에 와서 물을 마셨을때는
이런 모습이 아니었던걸로 기억하는데
어느날 보니 계곡 한가운데 오색 약수가 있었다.
원래 이곳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자주 오지만 그 이후 한번도 약수 맛을 보지 않았다.
저기로 내려갈 일이 귀찮아서였을 것이다.
주전골로 들어가 봤지만 아직 단풍이 들지 않아 다시 오색약수로 돌아 나온다.
주전골은 일주일에서 열흘은 더 있어야 고운 단풍을 볼수 있을 것이다.
오색터미널로 가면서 뒤돌아 본 주전골과 흘림골.
오색터미널에서 6시 20분 막차를 타고 동서울로 간다.
맑게 개일 내일이면 공룡능선도,화채능선도
화사한 단풍으로 깨어날 것이다.
그럼 나는 또 그 시간을 참지 못하고 하산한 나를 책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 순간이 중요했다.
빨리 집에 가고 싶었다.
집에 가서 개운하게 샤워하고
시원한 맥주 한잔 하고, 보지 않는 TV도 틀어 놓고 싶었다.
그리고 뒹굴거리다 나도 모르게 잠들고 싶다.
집에 가고 싶은 이유는, 늘 하는 소소한 그게 전부다..가장 큰 행복의 순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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