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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2012년

계룡산 설경(계룡산 갑사~동학사)

 

지난 발자취일뿐 많은 정보는 갖고 있지 않습니다..

남아있는 사진도 거의 없답니다..

꼭 필요한 정보는 다른 님들의 글을 참고하심이 좋겠네요~^^

 

2012년 12월 11일. 화요일

혼자 떠나는 길, 예순 다섯번째.

계룡산.

 

삼일째 계속 충청도에 내려가고 있다.그리고 연속 6일째 산행.

6일째 산행이래봤자 힘든 산행은 없었다.

단지 오고가며 차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고행이었을뿐.

지금 생각해보면 미친 짓이겠지만 이때 나는 그랬다.그래야만 했던것 같다..

 

계룡산엔 여러번 가봤지만 정작 겨울 계룡산을 보지 못한터라

그리고 충청도에 계속된 눈소식에 무조건 공주로 가는 7시 10분 첫차를 탄다.

 

공주 도착하니 계룡산을 가기위해선 시외터미널에서 좀 떨어진

시내버스 터미널로 가야 한단다.

선거철이라 시내버스터미널과 주변 시장엔 온통 새누리당이 점령하고 있다.

이미 충청도엔 분위기부터 새누리당이 민주당을 이기고 있었다.

이러던지 저러던지 난 관심없다. 애써 외면한다.

 

가보지 못한 신원사로 가려했는데 갑사 가는 버스가 빨리 도착해

터미널서 더 기다리느니 그냥 갑사로 간다.

 

 

 

 

산행코스 : 갑사 ~ 연천봉~ 관음봉~ 삼불봉 ~남매탑~ 동학사

 

 

 

 

 

10시 30분. 갑사 일주문을 지난다.

갑사야 여러번 와본지라 굳이 들르지는 않는다.

갑사는 420년(백제 구이신왕) 고구려에서 온 승려 아도가 창건하였다.

조계종 제6교구 본사 마곡사의 말사인 갑사는 가을 단풍으로 이미 유명한 곳이다.

 

 

 

 

어제까지는 좀 포근했던 날씨가 다시 한파주의보가 내렸다.

그래선지 아직까지 일대는 조용하기만 하다.

 

 

 

 

 

좌측은 금잔디고개로, 우측은 연천봉과 관음봉으로..

우측 연천봉 방향으로 간다.

 

 

 

 

앞에 가시던 30대 중후반쯤으로 보이는 직장인 몇분을 만난다. 워크샵을 왔다가

다른 분들은 대전으로 돌아가시고 나머지 몇분만 산행을 하고

대전으로 가신단다. 충청도에 와서인지 대전분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걸음이 많이 느린분들..ㅎ

산행은 1년에 서너번 특별한 일이 있을때만 하신단다.

그럼에도 걸음 맞춰 오시면서 많은 사진을 남겨주신다.

저 역시  산에 다닌지 얼마 되지 않았답니다 ~

 

 

 

 

온통 눈세상이다.

그 사이로 백설보다도 더 밝은 빛이 들어온다.

 

                                 

 

 

조금 황당한 얘기로 들리겠지만 6일째 새벽같이 어디론가 나서고 있었다.

산행을 하고자였는지, 설경을 보고자 함이였는지는 모르겠다. 

결론은 집에 있지 못했다는 것이다.

무언지 모르겠지만 나는 어디로라도 떠나야했다.

 

 

 

 

연천봉을 200m 남겨 둔 쉼터 갈림길이다.

막상 연천봉에서의 사진은 남아 있는게 없다.

연천봉에서는 상봉인 천황봉과 계룡산의 진면목을 볼수 있는 주능선을

모두 볼수 있는 전망 좋은 곳이다.

명성황후가 이씨조선의 영원불멸을 위해 연천봉에서 절을 세우고

기도를 올렸다는 곳.

                        

 

 

관음봉에 도착해서..

 

 

 

 

 

관음봉(816m)

관음봉은 산의 모습이 후덕하고 자비로운 관세음보살을 닮았다하여

이름 붙여졌다 한다.

최고봉인 천황봉은 군사지역으로 통제가 되어있고

관음봉이 실질적인 정상이라 보면 될것 같다.

쌀개봉과 문필봉,황적봉등도 통제구역이라 오르지 못한다.

그런데 어디로 오르는 길이 있던지 문필봉과 쌀개봉 다녀왔다는

이야기를 들은적은 있다.

 

 

 

계룡산 국립공원은

공주와 계룡,대전, 논산에 걸쳐있는 산으로

지리산과 경주에 이어 1967년 세번째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동학사(724년),갑사(420년), 신원사(651년) 3개의 천년사찰이 있고

국보2점과 보물 10점의 문화재가 있다.

계룡산은 닭벼슬을 쓴 용의 형상과 같다하여 유래되었다 한다.

 

계룡산은 예부터 풍수지리적으로 길지라 하여

요즘도 기도를 위해 많이 찾는곳으로 알려져 잇다.

 

 

 

 

삼불봉으로 이어지는 자연성릉길이다.

다른 각도로 사진을 찍으면 마치 성곽을 연상시킬만큼

산성길이 이어진듯 하다. 그런 사진이 남지 않아 아쉽지만.

 

 

 

 

관음봉에서부터는 제법 사람들을 만날수가 있었다.

 

 

 

 

 

동학사가 있는 동학사 계곡이다.

계룡팔경은 천황봉의 해돋이, 삼불봉의 겨울눈꽃, 연천봉의 해넘이(낙조)

관음봉의 구름, 동학사계곡의 신록, 갑사계곡의 단풍,

은선폭포의 자욱한 안개, 그리고 남매탑의 밝은달이라 하는데..

나는 이중에 몇군데나 충족하였으려나

 

 

 

 

철계단을 따라 자연성릉길로 내려선다.

 

 

 

 

 

 

얼마나 사진을 많이 찍어주셨던지

사진이 사라지고 또 사라졌는데도 내 사진은 여전히 이래 많이 남았다.

지금 생각해보니 참 유쾌한 분들이었다.

나는 계속 웃고 있었던것 같다.

 

 

 

 

어찌 내려왔나 싶은 관음봉을 뒤로 하고.

 

 

 

 

 

 

자연성릉을 지나면서 멋진 소나무도 많이 만난다.

나는 기억력이 좋지 않다.

그래도 남아있는 사진이 있는한 나는 그날을 기억한다.

그날의 사람들도 기억한다.

그래서 어딜가나 남기려 하는 이유다.

 

 

 

 

통제돼 갈수없는 쌀개봉도 희미하게 잡힌다.

남아있는 천황봉과 쌀개봉 관음봉, 자연성릉으로 이어지는

풍경 사진이 없으므로 마음에 안드나마 남은 내 사진으로라도

모두 대체해 넣는다.

 

 

 

 

천황봉과 쌀개봉과 관음봉이 보이는 곳.

 

 

 

 

 

삼불봉고개.

삼불봉은 200m만 오르면 된다.

삼불봉에서의 사진도 남아있지 않다.. ㅠ.

이럴때마다, 제대로 확인도 않고 버려버린 사진들.

나의 급한 성질머리를 책할 뿐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 뒤에도  버리고 또 후회하고 자책하고

어리석게도 끝날줄 모르는 짓을 반복해야했다.

지금도 후회할 짓을 하고 있는건 아닌지.

 

 

 

남매탑(오누이탑)으로 내려와서.

남매탑은 동학사와 갑사의 중간지점인 삼불봉 아래의

옛 청량사 터에 탑 두개로, 하나는 5층(보물 제1284호)

또 하나는 7층(보물 제1285호)로 청량사지쌍탑이라고도 불린다.

 

통일신라시대 한 스님이 토굴을 파고 수도를 할때

호랑이 한마리가 나타나 울부짓고 있어 입속을 보니 큰 가시 하나가

목구멍에 걸려있어 뽑아주었더니, 며칠뒤 호랑이는 보답이라도 하려는지

아리따운 처녀를 등에 업고와 놓고 갔다.

 

처녀는 상주사람으로 혼인을 치른 날밤 호랑이에게 물려

여기까지 오게되었다 한다.눈까지 많이 쌓인 추운 한겨울.

추위가 풀리고 봄이 되자 스님은 수도승으로서 남녀의 연을 맺을수 없기에

처녀를 집으로 돌려 보냈으나 그 처녀의 부모는, 이미 다른 곳으로

시집 보낼수도 없고 인연이 그러하니 부부의 연을 맺어달라 청한다.

 

스님은 고심끝에 그 처녀와 남매의 의를 맺고 비구와 비구니로써 불도에 힘쓰다가

한날 한시에 열반에 들게 되자, 이 두 남매의 정을 기리기 위해

탑을 세우고 두 스님의 사리를 모시게 되었다 한다.

                        

 

 

 

내가 속세에 찌든 것인지,

종교적인 그 힘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인지

종교가 무엇인지 새삼새삼 화두를 던져보게 된다..

 

 

 

 

동학사로 내려서는 길.

 

 

 

 

 

이런 눈길을 걷고 있자면 

훤칠한 외모만큼이나 열정적이던 시인 백석이 떠오르기도 한다.

사람을 사랑할줄 알았고 표현할줄 알았던 백석.

 

나는 표현하지 않는 사랑은 이제

사랑이라 말하고 싶지가 않아졌다.

만질수도 볼수도 없는 사랑은

더이상 사랑이라는 이름안에 넣어두고 싶지 않아졌다.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 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아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와 나타샤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를 타고

    시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는 아니 올리 없다

     언제 벌써 내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디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 것이다

                         

 - 백석이 대원각(지금의 길상사) 기생 김영한에게 쓴 시,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사랑이라는 감정이 있을때만큼 행복하고 삶의 활력이 되는 일이 또 있을까.

 

 

 

 

 

동학사 입구로 내려선다.

갑사쪽 보다도 눈이 많이 내린것 같다.

 

 

 

 

어떤 미사여구도 수식도 필요없다.

그저 이 길 위에 있음이 행복한 순간이다.

 

 

 

 

동학사는 신라 성덕왕 23년(724년)에 회의화상이 건립하였는데

당시 이 절은 문수보살이 강림한 도량이라 하여 청량사라 칭하였다.

이후 청량사는 고려 태조 3년(920)에 도선국사가 중건하면서

태조의 원당으로 불렸다.

원당은 조선 영조 4년(1728년)에 신천영의 난으로 모두 불타

약 80년동안 방치되다 그뒤 순조 14년(1814)에 금봉화상이 옛 원당 터에

절을 중건하면서 동학사로 개칭하고 고종 원년(1864년)에 만화화상이 동학사를 새로 세웠다.

 

 

 

 

천년고찰 동학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최초의 비구니 승가대학으로

비구니 스님들이 교육을 받고 정진하는 유서깊은 도량이다.

동학사는 운문사와 수덕사와 함께 우리나라 3대 비구니 도량으로 꼽히는 곳이기도 하다.

 

 

 

 

세상은 고요하고, 여름 신록으로 활기 넘쳤던 동학사도

흰 세상에 동화된 것인지 적막 그 자체다.

그 적막이 싫지 않은 동학사길이다.

 

 

 

 

동학사 앞의 눈꽃에 반해서 한동안 이 앞을 떠나지 못했다.

피곤한 줄도 모르겠다.

 

 

 

 

야~후~완전 신나욤~

봄이면 벗꽃으로 장관인길,

여름이면 그 푸르름으로 눈 부신 곳.

그러나 다 잊었다.

동학사는 지금 눈꽃세상이다.

이제부터 동학사엔 겨울의 설경도 하나 더 추가요~

 

 

 

 

에구~ 가지들 찢어지겠다..

그래도 보는 나는 즐거운걸 어쩌나~

 

 

 

 

 

동행하신 대전님들이 대전청사 버스정류장까지 태워주셔

바로 서울로 돌아올수 있었다.

님들 덕분에 생각지도 못하게 많이 웃었답니다.

고마웠습니다.

 

무작정 떠난 계룡산.

며칠째 이어진 여정으로 몸은 피곤에 찌들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온통 하얀 세상에 나는 웃고 있었다.

어둠이란 없을것 같은 눈세상에 나는 그저 고맙다 느꼈고

내가 그곳에 있음을 잠시 행복하다 취해 있었다.

나는 다시 온 세상이 고요한 그곳으로 가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