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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2014년

남한산성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다.

 

2014년 7월 10일 목요일

 

남한산성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11번째로 세계문화 유산이 된것이다.

더욱 새롭게 다가오는 남한산성에 간다~~

산성역 2번출구에서 평일은 9번과 52번 버스를 타고 종점에서 하차하면 된다.(주말은 9-1번과 52-1번)

보통은 산성로타리에서 북문쪽이나 수어장대, 남문으로 바로 오르지만

나는 오늘 정직하게 한바퀴를 다 돌아볼 생각이다.

 

 

 

산성로터리에서 동문 방향으로 간다.. 동문까지는 1km이상을 차도를 따라 걸어 내려가야해서

많이 이용하는 코스는 아니다.

 

 

 

동문(좌익문)

 

남한산성은 백제의 시조인 온조의 왕성이었다는 기록이 있고

나당전쟁이 한창이었던 신라 문무왕 12년(672)에 한산주에 주장성이라는  기록도 남아있다.

 

 

 

 

 

남한산성은 내성과 외성(봉암성,한봉성,신남성), 옹성(연주봉옹성,장경사신지옹성,제 1.2.3.옹성)까지

다양한 형태로 남한산성만이 가진 독특하고도 뛰어난 천혜의 군사요지였다.

외국의 침입시 임시수도 역할을 할수 있었던 남한산성의 행궁역시

유네스코 지정의 큰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남한산성엔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성곽을 휘휘돌아 그 아름다움을 배가 시켜주고 있다.

 

 

 

 

 

 

 

제2암문.

암문은 적의 관측이 어려운 곳에 설치한 성문으로 일종의 비밀통로이기 때문에 크기도 작고

적에게 쉽게 식별될수 있는 시설도 설치하지 않았다. 남한산성에는 총 16개의 암문이 있는데

이 암문은 경성사신지 옹성으로 출입하던 곳이다.

 

 

 

 

지나온 좌익문과 가야할 북문과 동장대터.

 

 

 

 

 

 

 

시야가 좋지 않은 날이라, 근처 산들이 선명하게 들어오지는 않는다.

가는동안 하남과 성남 시가지들이 들어오지만 탁한 시야때문에 따로이 담지는 않았다.

 

 

 

 

 

남한산성 여장.

여장이란 성위에 낮게 쌓은 담으로 이곳에 몸을 숨겨 효과적으로  적에게 활이나 총을 쏠수있게 만든 시설이다.

 

 

 

 

여장과 동장대터.

장대란 지휘와 관측을 위해 군사적 목적으로 지은 누각 건물로

남한산성에는 5개의 장대가 있었다.

 

 

 

 

 

 

 

제 4암문이 있는 곳이다

 

 

 

 

 

한겨울에는 산성이 뚜렷하게 보이지만 여름엔 숲에 가려 전부를 볼수는 없다.

 

 

 

 

 

 

 

 굽이 도는 산성이 이어지는 동안, 그 길과  그 담 하나하나 아름답지 않은곳이 없다.

 

 

 

 

산성 자체도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며 걸을수 있어 충분히 훌룡한 길이지만

주변의 소나무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어  힐링숲에 찾아온것 같은 길이 이어진다.

 

 

 

 

 

 

 

남한산성에 서너번 찾아왔지만, 사람 심리가 우스운지라 유네스코에 지정되었다 하니

남한산성이 또다른 모습으로 다가오는것 같다.. 이제는 우리것만이 아닌

세계인의 문화유산이 된만큼 더욱 소중하게 남겨야할  의무가 주어진 것이다.

 

 

 

 

 

의도치 않게 찍은 이 사진이 마음에 든다.

요즘은 초상권 문제로 다른 사람을 멀찍이 뒷모습외엔 담을수가 없으니

내가 모델겸 찍사까지 겸해본다..

 

 

 

 

 

 

 

 

성곽길이 너무 이쁘지 않나요~~

 

 

 

 

 

 

 

 

 

 

 

 

 

 

북문 거의 다와서..

굽이도는 산성길이 이뻐서  같은 장소에서 여러장의 셀카를 남긴다.

 

 

 

 

 

 

 

 

북문(전승문)

 

 

 

 

소나무가 어우러진 산성길.. 다시 또 걸어보고 싶어진다.

 

 

 

 

 

 

 

 

 

 

 

 

 

소나무숲과의 조화가 잘 이루어진 산성길.

 

 

 

 

 

 

 

수어장대와 서문으로..

 

 

 

 

이런 넓직한 길도 간간이 이어진다.

누구라도 쉽게 걸을수 있는 길이다.

 

 

 

나는 멋진 소나무 앞에선 항상 멈춰선다.

 

 

 

 

 

 

 

 

제 5암문(연주봉옹성 암문) 뒤편.

 

 

 

 

 

 

 

 

 

 

나는 사진을 찍을때 왼편을 높이는 안좋은 습관을 가지고 있어 대부분의 사진이

왼쪽이 올라가 있다. 한번 굳어진 습관은,

의식적으로 고치려해봐도 쉽사리 버려지지가 않는다.

 

 

 

 

 

 

수어장대로 가는길..

 

 

 

 

 

 

 

이 사진은 1892년~1893년 사이 이폴리트 프랑뎅이 찍은

수어장대의 모습으로, 1900년 4월 14일부터 11월 12일까지 열린

 파리 만국박람회의 공식 엽서 이미지로 사용되기도 했다..

수어장대 2층엔 창문까지 활짝 열려있고,

누군가 지고 왔다 잠시 내려놓은 지게와  갓을 쓴 사람들의 모습까지..

남길수 있었던 사진의 위대함을 느끼게 해준다.

 

 

 

 

 

 

수어장대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호.

장대란 지휘관이 올라서서 군대를 지휘하도록 높은 곳에 지은 건축물이다.

수어장대는 남한산성의 서쪽에 자리하고  장대로서 남한산성에 세워졌던 5개의 장대중 현존하는 유일한

건물이고 성안의 남아있는 건물중 가장 화려하고 웅장하다.

인조 2년 남한산성 축성때 단층으로 지어 서장대라 불리던 것을 영조 27년 유수 이기진이

왕명을 받아 이층으로 다시 짓고 수어장대라는 편액을 달았다.

수어장대 2층 내부에는 무망루라는 편액이 달려있었는데,

병자호란때 인조가 겪은 시련과 8년간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갔다가 귀국하여

북벌을 이루지 못하고 승하한 효종의 원한을 잊지 말자는 뜻에서 영조가 지은것이다.

현재 무망루 편액은 수어장대 오른편에 보호각을 지어 많은 사람들이 볼수 있도록 보관하고 있다.

 

 

 

 

 

 

 

 

 

 

 

 

뒤편 2층으로 오르는 나무계단.. 물론 지금은 올라갈수는 없다..

 

 

 

 

 

청량당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3호

이 사당은 남한산성을 쌓을때 동남쪽 축성의 책임자였던 이회 장군과

그의 부인의 넋을 기리기 위해 건립되었다.

이회는 공사비를 횡령했다는 누명을 쓰고 죽임을 당했고

이 소식을 전해들은 부인 송씨는 한강에 몸을 던져 따라 죽는다.

후에 누명이 벗겨지고 그가 맡은 공사가 가장 잘된것으로 알려지자

사당을 지어 초상을 안치하고 넋을 기렸다. 6.25때 소실되어 다시 지은 것이다.

 

 

 

 

 

 

 

 

남문으로 가는길.. 소나무 숲엔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펴고 산림욕을 즐기고 있다.

 

 

 

 

남문(지화문)

 

 

 

 

오늘의 마지막 여정 동문(좌익문)으로 간다..

탁했던 시야도 조금씩 파란 하늘을 찾아가고 있다.

 

 

 

 

 

 

 

남장대터를 지나 동문을 향해 내려선다.

 

 

 

 

 

 

 

 

 

 

 

한바퀴를 도는데는 3시간 이삼십분이면 충분하지만

나는 한시간 이상을 더 보내고서야  다시 동문을 지나 산성로터리로 돌아온다..

 

 

남한산성은 군사시설과 행궁의 임시정부 역활을 동시에 수행할수 있었던

의미있는 곳이었다.

인조는 병조호란시 궁을 버리고 남한산성으로 피신했지만

삼전도의 굴욕으로 서문을 열게된다.

그 굴욕적인 역사앞에서도 남한산성은 함락당하지 않고 오늘날

우리앞에 당당히 서서 세계인의 문화유산이 되었다..